2009년 10월 15일

크로포드, “게임 디자이너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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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환기하는 마음으로 번역해두었던 글을 하나 꺼내봅니다. 원제는 “게임 디자이너의 삶에 대한 간밤의 반추”(Late Night Ruminations on the Game Designer's Life)로, 1987년 크리스 크로포드가 쓴 글입니다. 당시 아타리가 무너지고 게임산업 전체가 길을 잃어버렸을 때, 크로포드는 ‘프리랜서’로 활동했는데요. 거기서 오는 고독과 부담이 장난이 아니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그는 게임 디자이너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술회합니다. 자, 소개는 이만 줄이고, 1987년 한여름 밤 고뇌하는 크로포드의 말을 들어봅시다.


 

 

크리스 크로포드

1987년 6월, 저널 오브 컴퓨터 게임 디자인 1권 2호

원제: Late Night Ruminations on the Game Designer's Life (원문보기 [영어])

 

나는 가끔 의식적으로 말한다. “이런, 난 분명 게임 디자이너가 됐어야 했어. 이 얼마나 재미있나!” 대체로 나는 웃으며 말한다. 그래, 재미있다. 게임을 디자인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 입만 아프다. 거기에는 나만의 시간을 완벽히 통제하는 축복과 저주가 있다. 내 일정의 모든 면은 나의 직접적인 통제 하에 있다. 나에게 있어 시간의 제약이란 열에서 열두 달 뒤에 완성된 게임을 보내주기로 한 계약 상의 구속 뿐이다. 그게 아니면, 난 자유다. 정말 일하기 싫은 날이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된다. 점심을 길게 가지고 싶거나 잠시 걷고 싶다면, 그럴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만큼 휴가를 가질 수도 있다.

이것의 저주란 책임이라는 감각에 무뎌진다는 것이다. 내가 최선을 다 하고 있지 않다는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는 한 자유를 버리지 않는다. 피고용인은 스스로에게 ‘어떻게 얻은 휴가인데, 즐길 거다!’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내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휴식 시간이 모두 프로젝트에 들일 시간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휴식이 뭔가 조금씩 조심스럽게 배급하는 것처럼 된다. 제정신을 유지할 만큼, 다음 업무를 위해 원기를 회복할 만큼만 휴식을 취한다. 3년간, 내 가장 긴 휴가는 요세미티에서의 3일이었다.

프리랜서의 또 다른 이중성은 그 창조적 자유에서 나온다. 이것의 좋은 점은 내가 최선을 다한 작품이 나올 기회를 준다는 것이다. 내 노력이 대규모 조직의 평범함 속에 희석되지 않는다. 회의실 자리를 채우거나, 이해력 부족한 부서에 내 결정을 설명하거나, 조직의 다양한 정치적 문제로 다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내 생애 그 어느 순간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하지만 그 대가가 밤 늦게 찾아온다. 눈을 뜨고 누워서 다음날 내려야 할 결정들에 대해 고민한다. 나의 불확실성을 잡아줄 자애로운 사장도 없다. 아이디어를 논의할 옆 사무실의 절친한 동료도 없다. 정수기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농담을 나눌 패거리도 없다. 나는 혼자다. 내가 내리는 결정이 나를 압박한다. 그 짐을 나눌 사람은 누구도 없다. 재정? 롤러 코스터 같다. 5년 전 나는 히트작을 냈었고, 부유했다. 3년 전 업계가 무너지고, 난 가난했다. 좋았던 날에 저축해 둔 돈이 꽤 된다는 사실만이 우릴 구제했다. 이제 나는 다시 히트작을 냈고, 다시 나는 부유하다. 하지만 로열티가 언제 말라버릴지 누가 알까? 이 다음 게임이 히트를 칠지 실패할지 누가 알까? 나는 돈을 저축하고 기를 쓰고 일하면서 노력과 재능이 파산을 면하게 해주리라 열렬하게 희망한다. 아직까진, 잘 된다.

재미있지 않다. 다른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말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당신을 재미있게 해줄 귀여운 술수들을 조립하면서 웃고 낄낄대지 않는다. 힘들고, 고된 일이다.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시험해 보고, 되지 않는 걸 몇 가지 더 시험해본 다음에서야, 결국 되는 것을 시험해본다. 화면 앞에서 얼굴을 찌푸리는 일이 많다. 프로젝트의 끝이 다가올 수록 나는 흉한 사람이 되어 간다. 나는 성질이 더러워 진다. 아내에게 소리도 지른다. 내 몸 수십 군데가 망가진다. 프로젝트도 싫고, 나도 싫다. 현실감각이 약해진다.

재미있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창작에서 오는 깊은 만족감이다. 코드 몇 줄이나 기능을 넣었다고 해서 나오는 즉각적인 만족은 아니다. 이 일의 진정한 즐거움은 극도의 분노 속에서 마지막 버그를 쫓아내고 몇 개월 뒤에야 온다. 마지막 디스크에 분노 아니면 피로 섞인 감정으로 설명서를 써 붙여 던지고 나서야 나의 삶을 오랫동안 망쳐놓았던 프로젝트로부터 즐겁게 돌아선다. 그리고 몇 달 뒤 택배 트럭이 내 게임이 담긴 상자를 배달해준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상자를 열면 거기에 내 게임이 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박스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구석구석을 음미한다. 안에는 매뉴얼과 디스크가 있다. 그것도 참으로 경이롭고, 프로스럽고, 완벽하다. 상자를 액자에 넣고 자랑스럽게 다른 창작물들과 함께 벽에 걸어 놓는다. 게임을 완성한지 몇 달이 지난 그제서야,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아직도, 지난 날을 돌아보고 내가 뭘 만들어왔는지 볼 때면, 창작의 즐거움보다는 창작의 고뇌에 무게를 둔다. 그리고, “그럴 가치가 있었다”고 말한다.

댓글 3개:

gump :

아 ~ 잘봤습니다.

밝은해 :

@gump - 2009/10/15 10:08
흐흐, 감사합니다.

saladom :

게임을 만들면서도 결코 즐겁지 않다는 사실이 뭔가 비극적으로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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