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0일

“슈퍼 콜럼바인 대학살 RPG!” 리뷰 – 제이슨 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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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이슨 로러가 쓴 2005년 공개된 게임 “슈퍼 콜럼바인 대학살 RPG!”(Super Columbine Massacre RPG!)의 리뷰입니다…요 며칠 업데이트가 없다가, 갑자기 왠 옛날 번역글 재탕이냐고 황당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예전 번역글을 여기로 옮기는 과정에서 이 리뷰를 깜빡 빼먹고 옮기지 못 했었네요…게다가 번역에 오역이 꽤 있어서, 다시 한 번 다듬고 고쳤으니 음미하면서 다음을 기다려 주세요! (예, 스크래치웨어 선언 2장이나 게임 디자인 강의 레벨 03이요!)

이 게임은 대니 레돈(Danny Ledonne)이라는 독립영화 감독이 1999년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격사건[footnote]두 학생이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총으로 살해하고, 23명을 다치게 한 사건. 범인은 현장에서 자살했다. 사건 이후 범인들이 즐겼던 록음악(마릴린 맨슨)이나 비디오게임(“둠”)이 미디어의 맹포화를 맞았다.[/footnote]을 주제로 만든 게임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파란이 일고, 여러 가지 고난을 겪고, 또 후폭풍을 양산했습니다. 게임계 내부에서도 찬반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아래 리뷰는 제이슨 로러가 운영하는 블로그 아트하우스게임즈에 올라온 것입니다. 같은 사이트에 올라온작자 제작자 인터뷰도 번역한 게 있으니, 흥미가 가면 참고해보세요.

제이슨 로러는 자신의 글을 퍼블릭 도메인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누구든지 자유롭게 어떤 목적으로든 복제, 개작, 전송, 배포할 수 있습니다. 번역문 역시 로러의 뜻을 따라 자유롭게 복제, 개작, 전송, 배포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기왕이면이 블로그로의 링크도 포함해주시면 감사해요 :)





2007년 1월 1일

제이슨 로러

원문보기 [영어]


“콜럼바인 RPG!”는 대니 레돈이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학살사건을 탐구하고자 만든 비디오게임이다. 그의 성명에는, “뭔가 문제가 될만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며 “몇 달의 자유시간을 허비해 쉽게 잊혀질 신화 속 용의 왕국나 우주선이 나오는 어드벤처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성명을 모두 읽을 수 있어도 좋지만(그러길 권한다), 이 리뷰에서 중요한 것 하나만 말하자면 그가 이 “콜럼바인 RPG”로 어떤 높은 이상을 노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레돈은 우리를 총격이 있는 날 아침으로 데려다 준다. 그런데 ‘우리가’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볼드(학살사건의 범인들)이 되어 행동한다. 게임은 해리스의 침실에서 그의 어머니가 잠을 깨우는 전화를 받으며 시작한다. 당신은 곧 기지로 가서 장비(더플 백과 프로판 폭탄)를 챙긴다. 그 때, 클레볼드가 기지로 들어와 합류하고, 이후 대부분의 게임에서 두 소년을 한 팀으로 조작하게 된다.

게임은 별개의 세 “막”으로 나뉘어 있다. 제1막에서, 목표는 장비를 모으고 학교로 가서 아무도 눈치 채지 못 하게 식당에 폭탄을 심어 놓는 것이다. 이 막에서는 거의 어드벤처 게임 같은 플레이를 한다. 필요한 아이템을 챙기고, 그걸 정해진 위치에 놓으며 홀의 모니터와 보안 카메라를 피한다. 1막에서는 경험치처럼 흔한 롤플레잉 요소가 없다는 게 두드러 진다.

게임의 이 부분은 가장 성공적으로 감정의 힘을 이용했다. 준비작업을 당신 스스로 수행한다는 것이 뭔가 불안하고 감정이 흔들리는 느낌이 있다. 콜럼바인 사건을 다룬 영화(“엘리펀트”, 2003, 구스 반 산트)를 본 적이 있지만, 이런 방법으로 얽지는 못 했었다. 그저 스페이스바를 눌러 해리스의 기지에서 더플백을 챙기는 것 뿐인데, 뭔가 ‘내가 했다’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준비작업에서 나타나는 슬픔과 외로움, 절망, 체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아마 어느 것도 우리를 그 날 해리스의 머릿 속으로 들어가게 할 수는 없겠지만, “콜럼바인 RPG”는 정말 가깝게 갔다.

게임의 다른 부분도 마찬가지지만, 1막에서 사건당일 이전에 대한 회상 장면의 해리스와 클레볼드의 사이의 대화(대부분 그들이 쓴 글이나 홈 무비에서 자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가 꽤 잘 쓰여졌다. 레돈은 가능한 실제 사건과 가깝게 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콜럼바인 RPG”를 플레이하면서 여러 번 나는 어떤 사건이나 세부사항을 접하며 “잠깐…‘이거’ 정말로 일어났던 일이었나” 생각하게 된다. 회의적인 생각이 나를 구글로 달아나게 만들지만, 빈번히 내 의심을 가라앉혀야 했다. 분명 레돈은 이 게임을 만들려고 엄청냔 양의 자료조사를 했다.

1막의 끝 부분에서 해리스와 클레볼드는 설치한 폭탄들이 계획대로 폭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어쨌든 총을 쏘기로 결심하고, 내가 제2막이라로 부르는 부분으로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게임은 표준적인 롤플레잉 게임(주제는 표준적이지 않지만)으로 변한다. 이제 당신은 학생과 선생님들이 겁에 질려 뛰어다니는 주차장이나 홀을 어슬렁거리게 된다. 당신이 그들 중 누군가에게 뛰어들면, 화면은 턴 기반 전투 모드로 전환되어 당신의 상태를 보여주고 공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공격하며, 궁지에 몰린 희생자가 반격하고, 그러면 당신이 다시 공격하는 패턴이 희생자가 쓰러질 때까지 계속 된다.

“승리”할 때마다 해리스와 클레볼드는 경험치를 얻고 아이템도 획득할 수 있다. 경험치가 모이는 대로 해리스와 클레볼드는 더 높은 전투 레벨로 올라가며, 공격력과 방어력이 더 강력해 진다. 이건 표준적인 롤플레잉 게임으로, 따분하고 반복적으로 만드는 게임플레이가 계속 된다. 운동소년(jock-type)이 당신 앞을 지나가면, 에릭이 샷건을 쏜다. 운동소년이 매트릭스처럼 피한다. 딜런은 TEC-9 총알을 뿌린다. 운동소년이 82의 대미지를 받는다. 운동소년이 공격한다. 에릭이 1의 대미지를 받는다. 에릭이 샷건을 쏜다. 운동소년이 82의 대미지를 받는다. 운동소년이 쓰러진다. 트렌치코트 마피아의 또 한 번의 승리. 당신은 25 경험치를 얻는다. 에릭은 전투 레벨이 14가 되었다. 딜런은 전투 레벨이 14가 되었다. 반복.

2막과 실제 콜럼바인 사건의 접점은 표준적인 RPG에 새로운 색이 입혀졌다는 것 뿐이다. 당신이 조우하는 적은 “운동소년”(jock-type)이나 “교회소녀”(church girl), “부잣집 애”(preppy boy), “흑인소년” (black kid), “인기있는 여자애” (popular girl) 같은 별명을 달고 있는데, 아이들이 쓴 글과 기록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공격할 때 이용할 수 있는 무기(TEC-9, 총신을 자른 샷건 등) 역시 실제 사건과 일치한다.

한편, RPG 모델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왜 희생자들이 반격을 하는 걸까? 물론, 그들이 받는 것에 비해서는 아주 작은 대미지를 주지만, 그래도 너무 활동적이다. 내가 알기로는 희생자 대부분(심지어 “운동소년”도)이 해리스와 클레볼드의 총에서 연기가 나는 걸 보며 공포에 움츠렸다. 그리고 왜 해리스와 클레볼드의 “전투 레벨”이 올라가는 걸까? 실제 사건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의 전투 능력은 형편 없었을 거다(완전무장해서 모두를 죽이려고 했는데, 단 12명만 죽였다). 그리고  총을 쏴나가면서 마음은 점점 나약해졌을 것이다(아마 점점 걱정이 늘어났을 텐데, 누가 알까?). 그런데 “콜럼바인 RPG!”에서는 해리스와 클레볼드가 점점 전투의 신으로 성장해가는 걸 보게 된다.

2막은 당신이 원하는 만큼 계속 된다. 원하는 대로 많으면 많게, 적으면 적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이 또한 실제 총격사건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건 게임이고 영화가 아니다. 레돈은 우리에게 플레이어로서의 자유를 주었다. 결국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게 되면, 당신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자살할 것인가, 계속 죽일 것인가? 당신이 결국 모든 것을 끝내기로 결정하면, 긴 사진자료를 보게 된다(해리스와 클레볼드가 도서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는 사진 두 장을 포함해서).

그리고, 내가 제3막이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여기서 이 게임의 아주 놀라운 부분이 나온다. 그러니 스포일러를 싫어 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그만 읽길 바란다.

클레볼드는 지옥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지옥은 잡다한 악마로 들끓는데, 모두 “둠”(소년들이 꽤 즐겼던 게임)에서 뛰쳐나온 듯한 모습이다. 2막의 학생과 선생님들에 비해 악마들은 무시무시하게 강하다. 게다가 당신으로부터 도망쳤던 학교의 적들과 달리 당신의 캐릭터를 추격하기 때문에 전투는 피할 수 없다. 처음에는 계속 반복해 죽어서 지옥을 계속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앞으로 나가려면 지옥으로 오기 전에 아주 높은 전투 레벨을 달성해야 한다. 어떻게? 2막에서 자살을 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학생과 선생님들을 죽이면 된다. 내 경우에는 ‘학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죽인’ 후에도 지옥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이건 이성적인 메시지로도 이상한 게임 메커닉으로 보이고, 그래서 “콜럼바인 RPG!”가 예술작품으로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게임 메커닉은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학교의 모든 사람들을 죽일 수 밖에 없게 한다(실제로 죽인 열두 명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말이다). 만약 충분한 수를 죽이지 못 했다면 3막의 시장에서 막혀 진행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게임을 게임으로 만드는 것, 게임의 심장은 상호작용의 메커닉이다. 따라서, 예술게임은 반드시 예술가가 탐구하고자 하는 생각을 뒷받침해줄 메커닉이 있어야 한다. 물론, 나는 레돈이 실제 총격사건을 탐구하려 했다고 짐작했었다. 그런 경우였다면, 레돈은 실패했다. 게임 메커닉이 열두명의 사람만 죽이고 자살하도록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우리는 사실적인 결말로 이끌 수 있는 여러 메커닉을 상상해볼 수 있다. 아마 어떤 종류의 불안 요소 같은).

그러나, 3막에 지옥을 넣었다는 점을 보고 레돈이 뭔가 다른 것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세 막을 모두 고려해본다면, “콜럼바인 RPG!”는 해석의 다양성이 원숙한 게임이다. 앞서 내가 언급했던 메커닉의 “결함”은 사실 다른 숙제를 가져다 준다. 만약 “콜럼바인 RPG!”가 해리스와 클레볼드가 상상했던 환상 속의 총격사건을 나타내려고 했던 것이라면? 그들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가능한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으니, 메커닉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라면? 소년들이 구상했던 총격사건이 일종의 비디오 게임이었다면, 아마 그들은 자기들이 전투 능력을 높이며 “레벨 업”하리라 상상했을 것이다. 따라서, RPG 형식을 취하는 것조차도 적절할지 모른다.

만약 이 게임이 미디어와 일반적인 미국 대중이 상상하는 사건(아니면 최소한 대중의 편견)을 그리고자 했다면 어떨까? 분명, 해리스와 클레볼드는 지옥에 직행해서 다른 부적응자들(존 레논과 프레드리히 니체, 소크라테스는 게임 속 지옥의 섬에서 살고 있다)을 만났을 것이다.

지옥을 돌아다니다 보면, 클레볼드는 결국 해리스와 다시 만난다. 잡다한 악마들과 싸우면서 지옥의 거주자들과 흥미로운 대화도 나누게 된다(니체와 주고받는 대화는 아주 잘 쓰여졌다. 그라면 콜럼바인 사건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결국, 당신은 사탄과 싸우게 된다. 게임은 해리스와 클레볼드가 떠난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며 끝난다. 바로 다양한 인물들이 콜럼바인 사태를 저마다의 견해로 설명하려는 기자회견장이다. 물론 여기서 다 언급하기엔 너무 많다.

나는 “콜럼바인 RPG!”가 예술작품으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우리의 첫인상을 뒤엎고 우리를 생각하게 한다. 이 게임은 분석과 토론이 요구되며, 실제 사건과 비교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름은 왜 그럴까? 이름에 느낌표를 넣은 이유가 있을까? 레돈이 단순히 악명 높은 사건을 이용해 주목을 받고 싶었던 걸까? “콜럼바인 RPG!”는 악의적인 게임인가? 만약 그렇다 해도 우리는 열린 마음으로 이 게임을 환영해야 한다. 악의적인 게임과 “매든 NFL 20어쩌구” 중에 뭘 만들 거냐고 하면, 나는 언제라도 악의적인 게임을 고를 것이다. 최소한 우리에게 말하고 생각할 거리는 준다. 그리고 “콜럼바인 RPG!”는 혹시 있을지 모르는 악의적인 성질보다는 토론하게 만드는 것이 더 많다.

예술작품으로서 성공적이라면, 게임으로서는 어떨까?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왜냐면 낡아빠진 RPG 요소는 원래 그랬듯이 지루하다. 학생부터 교사, 마지막 악마까지 전투는 모두 단조롭고 반복적이다. “콜럼바인 RPG!”는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운 게임 모델(RPG)를 예술의 토대로 이용했다. 이 예술은 게임 디자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레돈이 게임을 이용해서 한 것에 있다. RPG는 단순히 그의 매체, 표현의 토대이다. 게임이 단지 콘텐트의 뼈대로서 작용한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즉, 예술은 그 컷씬에 있다던가), “콜럼바인 RPG!”는 그보다 더 복잡하다. 레돈이 게임을 매체로 사용한 방법은 그의 표현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고, 아마 컷씬 콘텐트보다 그의 예술적 성취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플레이하기도 흥미로우면서 생각하기도 흥미로운 게임이 있다면 더 대단하지 않을까? “콜럼바인 RPG!”와 “엘리펀트”를 비교해보자. “엘리펀트”는 콜럼바인 사건을 다룬 영화로 보기에는 지루하지만 생각하기에는 흥미롭다. “엘리펀트”가 영화로서는 실패했지만, 예술작품으로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어도 성공했듯이, “콜럼바인 RPG!”도 게임으로서는 실패했지만 예술로서는 성공했다. 두 작품 모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의 절반만 했다.

그래도, “콜럼바인 RPG!”의 핵심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혼란스럽게 하고, 당혹스럽게 하며, 생각하게 한다. 이 게임은 예술게임의 아주 좋은 예이며, 왜 우리에게 인디 게임이 필요한지 말해주는 완벽한 예다(왜냐면 이런 게임에 투자할 퍼블리셔는 없으니까). 우리는 이런 게임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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