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1일

탐험: 시스템에서 공간에서 자기로,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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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GDC에서 게임 디자이너 클린트 호킹이 발표한 강연의 대본을 번역한 것입니다. 클린트 호킹은 강연 자료를 공개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원본 자료는 http://www.clicknothing.com/의 우측 사이드바 DESIGN MATERIALS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호킹은 유비소프트 몬트리올에서 스플린터 셀 3편과 파 크라이 2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고, 현재는 루카스아츠에서 공개되지 않은 프로젝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호킹은 메이저 개발자 중에서 자기 철학을 적극적으로 설파하기로 유명하기도 한데요. 이 발표 역시 게임계가 몇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길 제안하고 있습니다.

발표에서 호킹은 소설의 독자가 책에서 단서를 풀어내는 탐정이라면, 게임의 플레이어는 시스템을 탐험하는 탐험가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하는 탐험의 종류를 시스템 탐험, 공간 탐험, 자기 탐험으로 나누고, 지금까지 게임이 어떤 설계로 시스템과 공간의 탐험을 장려해왔는지 설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탐험, 즉 플레이어 자신을 탐험하는 시스템의 설계를 게임에 더 늘릴 것을 제안하고, 울티마 4가 그 점에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분석한 뒤 무하마드 알리를 소재로 한 가상의 자기 탐험 게임 시스템을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클린트 호킹 | 2007년 3월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클린트 호킹이고, 오늘은 탐험에 대해 말할 겁니다. 꽤 광범위한 주제죠. GDC 웹사이트나 안내책자에서 강연 설명을 읽어보셨다면 이런 문구를 기억하실텐데요.

“이 강연은 인간의 탐험하려는 충동을 탐구한다.”

그게, 사실, 완전 거짓말입니다. 제가 처음 이 강연을 생각했을 때는 그러고 싶었어요. 인간인 우리를 미지에 부닥치게 만드는 선천적 욕구를 말하려고 했었습니다...


우리가 첫 발을 내딛도록, 가장 먼 곳까지 가도록 이끄는 열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500여년 전 콜럼버스에 앞서 레이프 에이릭손을 북아메리카로 이끈 그것. 데이비드 리빙스턴 박사가 중앙 아프리카에서 나일 강의 시원지를 찾도록 이끈 그것. 에드먼드 힐러리 경을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도달하도록 이끌고,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도록 유혹하고, 커크 선장이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도록 부채질한 그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을수록, 그 충동을 이해하려 할수록, 실제로 탐험가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탐정에 대해 이야기해야 했어요.

탐정



배트맨은 탐정입니다.

여담인데, 저는 항상 배트맨이 근사하다고 생각했어요. 멋진 장비들과 끝내주는 자동차를 가졌다거나, 스무  명 쯤 되는 악당을 한 번에 때려눕힐 수 있는 점 때문이 아니에요.


배트맨이 멋진 이유는 배트맨이 무얼 하는가가 아니라,


배트맨이 누구인가에서 나옵니다.


어쨌건, 이 분은 조지 맥휘터(George McWhirter)입니다. 탐정은 아니에요. 작가죠. 2004년인가, 2005년인가 은퇴하기 전까지는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셨습니다. 제 석사논문의 지도교수기도 하셨죠.

오래 전, 그러니까 아직 학부생이었을 때, 교수님이 워크숍에서 제가 쓴 이야기에 대해 하신 말이 있습니다. 아직도 가슴에 담아두고 있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모든 이야기는 탐정 이야기다.”

모든 이야기는 탐정 이야기다


그 말의 무언가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그 의미를 밝혀내려고 했죠.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 뿐이다.”
- 루즈벨트

그건 단순하면서도 영리한 말이었습니다.


“E=mc2”- 아인슈타인

우아하고 근본적인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와 탐정 이야기 사이의 관계야 명확하죠. 그러니까, 이야기 중에 탐정 이야기가 있다는 건 누구라도 압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 문제에 전혀 다른 층이 있음을 제시하는 것 같았어요. 그게 계속 머릿 속에서 멤도는 바람에 뭔가 이상해질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밝혀낼 수 있었습니다. 우측 그림 같은 종류의 탐정 이야기는 말 그대로 탐정 이야기죠. 해머트나 챈들러나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작가들이 범죄를 해결하는 탐정에 대해 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조지 교수님이 탐정 이야기라고 한 건 이야기의 종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독자의 성질을 말하는 것이죠.


즉, 읽는다는 행위가 읽는 사람을 탐정으로 만들기 때문에 모든 이야기는 탐정 이야기입니다.

독자는 탐정이다



작가가 이야기를 쓸 때는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독자는 마치 탐정처럼, 작품 속에 있는 단서들을 따라 작가가 그 안에 넣은 의미를 재구성하며 이야기를 읽습니다.


사실, 이렇게 저자와 독자의 관계를 생각하는 관념은 고전적입니다. 1968년, 프랑스 문학 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저자의 죽음’이란 에세이에서 저자-독자 관계에 있어 이런 해석을 거부하고 그 관계에서 독자의 중요성에 무게를 싣습니다. 더 나아가 저자의 의도란 독자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모호하며 중요치 않다고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문학 측면에서 볼 때, 저는 바르트를, 솔직히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볼 때는 좀 다릅니다.

모든 게임은 탐정 게임이다?



디자이너가 게임을 만들 때도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탐정처럼 단서를 따라 디자이너가 넣은 의미를 재구성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 대화에 참여하게 됩니다.

바르트의 말처럼 디자이너가 전하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로서는 플레이어가 궁극적으로 이런 걸 경험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플레이어에게 주는 건 이게 아닙니다.


이거죠.


그리고 플레이어가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길 바라며 지도를 줍니다.


하지만 사실 게임에서 의미가 있고 중요한 건 이 대화입니다. 플레이어에게 게임을 즐길 기회, 게임을 이해할 기회, 그리고 바라기를 자기 자신을 이해할 기회를 주는 건 바로 이 대화입니다. 이것은 저자가 넣은 의미를 재구성하는 대화가 아닙니다.

탐험하는 대화입니다.

그러니까 읽기 행위가 읽는 사람을 탐정으로 만들기에 모든 이야기가 탐정 이야기라고 한다면요.

“모든 이야기는 탐정 이야기다.”
“모든 게임은 탐험 게임이다.”

그 말을 게임에 적용하면, 플레이하기 행위가 플레이하는 사람을 탐험가로 만들기에 모든 게임은 탐험 게임입니다.

자, 단순하고 영리한 말로 정리하는 건 좋습니다. 우아하고 근본적인 말이면 더 좋죠. 하지만 세상에는 우아하고, 영리하고, 단순하고, 근본적이면서도 또 거짓인 말들도 참 많습니다.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
-닉슨

그러니까 먼저 가장 근본적인 종류의 탐험부터 살펴보죠.

바로 시스템 탐험입니다. 시스템 탐험은 모든 게임이 탐험 게임이란 말을 참으로 만드는 탐험입니다.

시스템 탐험


정의를 먼저 보죠. 그리고 그 전에 정의가 장황한 점도 사과해야겠습니다.

출력이 이해되고 예측될 수 있을 때까지 입력을 조정하고, 예측 가능한 출력을 활용하여 전체 가능 공간이 예측 가능하게 작용할 때까지 게임의 점점 더 높은 수준에 입력하고자, 출력이 식별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에서 게임에 입력하는 행위.

웩. 정말 추하고 거추장스러운 정의라는 건 압니다. 평범한 말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진행하고 지루해질 때까지 플레이할 수 있도록, 게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혀내고자 플레이하는 행위

어떻게 보면 시스템 탐험은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수행하는 과학적 방법의 변형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첫 화면을 마주친 플레이어는, 스틱을 움직이거나 버튼을 누르면 자신이 어느 ‘부분’을 조작하게 될지 알게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울 겁니다.

자그마한 배관공이 움직이며 가설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자신의 부분을 움직이는 가장 낮은 수준의 입력들을 탐험하기 시작하고(이건 말 그대로 처음 5초 안의 플레이죠), 아바타의 움직임에 대해 쉽게 증명할 수 있는 가설들을 모조리 시험합니다.


그러다 또 다른 움직이는 요소를 만납니다. 플레이어는 그걸 친구라고 가정했다고 하죠. 껴안으려고 다가갑니다. 그러자 아바타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시작 지점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가설은 잘못된 것이었으니 그 움직이는 것이 적이라는 새로운 가설을 세웁니다.

플레이어는 앞서 증명한 움직이고 점프하는 것에 대한 가설들을 활용해 적을 피하고 게임을 진행합니다.


이제 게임을 시작한지 20초가 되었고, 앞으로 십수시간 정도가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십수시간도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반복하는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여기서 뭔가 위험한 걸 떠올리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이 과정은 그 악명 높은 ‘시행착오 게임플레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게 그거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디자인 방식은 이 과정의 길이를 줄이고 플레이어가 그 과정을 빠르게 반복할 수 있게 하는데 집중하는 것 같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가령 행동유도성(어포던스, affordance)이란 개념이 이 과정의 전반부를 다루고 있죠.


이 사악해보이는 눈썹은 쉽게 관찰할 수 있고 플레이어가 세울 가설의 정확성을 높여줍니다.


피드백은 이 과정의 마지막 부분을 단축시키는 디자인 개념입니다. 명확하고, 뚜렷하고, 유익한 피드백은 분석의 정확성을 높여줍니다.


행동유도성을 늘리고 피드백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게임 개발의 모든 분야가 활용됩니다. 이 과정을 단축하는 중요한 도구들은 그것 말고도 있긴 한데, 이 두 개념이 우리가 프로젝트에서 하게 되는 대부분의 개발 작업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이 플레이어가 게임 공간을 탐험한다는 근본적인 개념을 뒷받침합니다.

라프 코스터는 “재미 이론”에서 시스템 탐험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능 공간을 그것을 탐험해서 알아볼 수 밖에 없다. 대부분 게임은 반복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진화하는 공간을 제시해 그 안에 있는 상징의 재현을 탐험할 수 있게 한다. 현대의 비디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복잡한 공간을 탐사할 수단을 주고, 탐사가 끝나면 게임은 또 다른, 또 다른, 그리고 또 다른 공간을 준다.

라프가 말하는 건 보상과 도전의 동시 진화입니다.


게임은 어느 수준으로 복잡한 도전으로 시작하고, 플레이어에겐 그 도전에 맞설 수단이 있습니다. 그 수단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 도전을 완수하면 수단의 복잡성이 증가하는 보상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보상은 도전의 복잡성이 증가함으로써 균형이 맞춰집니다.

이 과정을 질리도록 반복하는 게 게임입니다.

어떤 게임 디자이너는 이 화제를 약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이게 가장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해요.

게임 디자이너이자 스트리트 파이터 플레이어인 데이비드 설린은 자기 책 “Playing to Win”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게임을 서로 다른 전술/전략/캐릭터를 나타내는 많은 언덕과 봉우리가 있는 위상 지형으로 생각한다. 봉우리가 더 높을수록 그 전략은 더 효과적이다. 플레이어는 이 지형을 탐험하고, 언덕과 봉우리를 발견하며 알게 된 언덕과 봉우리에서 가장 높은 곳들에 오른다.”

설린은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짓습니다.

“말하자면, 승리하려는 플레이에는 탐험이 동반된다.”


이 설명이 우리에게 공간 탐험과 더 추상적인 시스템 탐험 사이의 명확한 유사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더해, 그리고 “달심이 이길까, 발록이 이길까” 같은 중요한 질문에 답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떠나, 여기서 중요한 건 설린의 설명이 정말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시작하면서 인간이 탐험하고자 하는 충동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이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왜 저기 올라가고 싶어하는지 많은 분들이 이해할 거라 확신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힐러리 경 같은 사람이 앞서 말한 탐험에 대한 개념을 보면 왜 게임을 플레이하는지 이해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죠.

이제 시스템 탐험에 대한 생각들을 종합해보죠. 먼저 그것은 고속으로 수행하는 과학적 방법입니다. 저수준 반복을 아주 민첩한 속도로 수행합니다. 이 과정이 길면 시행착오 게임플레이로 변질됩니다. 그리고 보상을 진행과 동조시킵니다. 이건 이것만 가지고도 강연을 할 가치가 있는데, 여기선 단순하게 요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금 말했듯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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