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1일

탐험: 시스템에서 공간에서 자기로,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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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탐험


이제 공간 탐험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이건 복잡하게 말할 수도 없으니 더 단순하게 설명이 가능합니다. 말 그대로 정의해볼 수 있는데요.

플레이어의 모사된 물리적 공간 탐험

정의 자체가 간단한데, 정의를 굳건히 하려면 여기서 몇 가지 더 생각해봐야 할 게 있습니다.


먼저, 시스템 탐험과 달리 공간 탐험은 근본적인 게 아닙니다. 공간을 탐험할 기회가 없어도 게임을 만들 수 있죠. 가장 성공한 게임 중 하나인 팩맨은 얼핏 보기엔 있어 보이지만 공간 탐험 기회가 없는 게임입니다.


다음으로, 공간 탐험에 굳이 3차원적인 공간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의 코인 동굴은 공간 탐험을 유도하고, 어드벤처와 젤다의 전설 같은 게임에서 탐험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에서조차도 모사된 공간에서 공간 탐험을 할 수 있습니다.

공간 탐험 장려하기


공간 탐험은 근본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그걸 게임에 넣느냐는 선택입니다. 공간 탐험을 많이 제공하는 데 집중한 게임이 그렇지 않은 게임들과 경쟁하게 됩니다. 그러니 공간 탐험을 장려할 수 있는 핵심적인 방법 몇 가지를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실용적인 방법은 보상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모사된 공간을 시스템 그 자체로 바꾸는 겁니다.

보상의 분배


보상의 공간적 분배는 커다란 주제이므로 여기서는 일반적인 사항만 다루겠습니다. 보상 분배에 관한 디자인 결정은 보상의 수와 가치에 대해 바라는 보상의 양의 균형을 맞추는 일입니다.


만드는 게임이 이야기가 주도하는 액션 게임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과 극적 긴장감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걸 위해 탐험을 축소하고 높은 가치의 탐험 보상을 적은 수로 제공해야 합니다.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플레이어가 액션 사이사이 1초 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찾도록 만들면 좋겠죠. 오리지널 의 숨겨진 공간이 딱 그렇습니다. 체력과 탄약, 기타 파워업 등 가치있는 것들이 잔뜩 쌓여있는 곳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찾기 쉬운데, 그럼에도 플레이어가 스스로 영리하다고, 뭔가 중요한 걸 찾았다고 느끼게 하죠.


반면, 게임이 더 열려있고 플레이어가 플레이를 주도해 스스로 나아가는 힘을 조절하도록 하고 싶다면, 더 작은 보상이 아주 많은 수로 분포되도록 하면 좋겠죠.



GTA가 훌륭한 예입니다. 난동부릴 기회와 스턴트, 무기, 희귀 차량 같은 것들을 제공하는 데 더해, 플레이어의 은신처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무기를 해제하는 비밀 패키지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죠. 숨겨진 공간을 찾느냐가 생사를 가르는 둠과는 달리, GTA에서 그런 보상들은 거의 별 가치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공간을 탐험해야만 비로소 가치를 얻죠.

전략적 위상 - 시스템 공간


공간 탐험을 장려하는 또 다른 방법은 게임 세계의 공간적 위상에 대한 이해를 전략 혹은 전술적 소재로 만드는 겁니다.

체스를 보죠. 팩맨과 달리 체스는 그 전술적 위상이 말마다 다르다는 점에서 공간 탐험 요소가 존재합니다.


시간에 따라 나이트와 비숍에 대한 체스판의 전술적 위상이 어떻게 변하는가 보겠습니다.



한 번 움직일 때, 나이트는 이 칸들을 공격할 수 있고, 비숍은 이 칸들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두 번 움직일 때, 나이트는 이 칸들을 공격할 수 있고, 비숍은 이 칸들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세 번 움직일 때, 나이트는 이 칸들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비숍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네 번째 움직임에는 이렇습니다.

체스는 내 말들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지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덜 추상적인 예를 들어보죠. 이건 스페인 서남해안의 지도입니다. 지브롤터 해협 바로 북쪽이죠.
화면 가운데 젖꼭지처럼 튀어나온 곳이 트라팔가르 곶입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에게는 이 지도가 땅과 바다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해도 괜찮습니다. 땅에는 암반과 강, 길, 마을, 평야, 나무가 있고, 바다는 평평한 모습이죠.


그런데 이 글을 읽는 사람이 프랑스와 스페인 갈레온의 호위함을 공격할 전투 계획을 세우는 허레이쇼 넬슨 제독이라면, 바다의 위상이 평평하다고 생각했을 때 굉장한 문제가 일어날 겁니다.


사실 바다의 위상은 이런 모습에 더 가깝습니다. 넬슨 제독이 이걸 몰랐다면...음, 제가 지금 이 강연을 프랑스에서 하고 있었겠죠.

어쨌든, 이렇게 ‘지도’의 모양 혹은 위상에 대한 이해는 앞서 말한 시스템 탐험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이해는 플레이어가 공간을 탐험하도록 장려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죠.

이제 공간 탐험에 대한 생각을 종합해보겠습니다. 먼저, 보상의 가치에 대해 그 수의 균형을 맞추어야 합니다. 탐험을 장려하고 싶다면 어디에나 있는 낮은 가치의 보상들이 필요할 겁니다. 두번째로, 전략적 지형의 성질을 고려한다면, 플레이어는 게임 전략을 이해하는 수단으로 물리적 공간을 탐험하려 할 겁니다.

탐험 이용하기 - 시스템과 공간


그럼, 제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의 궁극적인 요점인 자기 탐험으로 넘어가기 전에, 디자이너들이 여러 종류의 탐험 사이에 양의 피드백 루프를 만드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시스템 탐험과 공간 탐험에서 모두 보상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자, 이제 공간 탐험에 대한 보상이 플레이어가 시스템을 탐험하도록 하고 그 시스템 탐험에 대한 보상이 플레이어가 공간을 더 효과적으로 탐험하도록 하는 게임을 디자인한다고 해보죠.



오블리비언에서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그런 피드백 루프를 만들었는지 봅시다.


앞서 말했듯이, 공간 탐험을 장려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가 낮은 보상을 다량으로 세계 곳곳에 분배하는 겁니다.

오블리비언은 연금술 재료로 이것을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시스템 탐험을 장려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실험 과정이 아주 짧고 위험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블리비언에서 포션을 만드는 데는 비용이 거의 들어가지 않고, 실패에 대한 위험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연금술 스킬 시스템을 자유롭게 탐험해 더 좋은 포션을 많이 만들 수 있죠.

포션 자체는 체력이나 이동 속도, 아이템 휴대량 등을 올려 플레이어가 더 멀리, 더 오랫동안 탐험할 수 있게 해줍니다. 어떤 포션은 수중에서 숨을 쉴 수 있게 하거나, 어둠 속에서 볼 수 있게 하거나, 강력한 적을 피하도록 몸을 보이지 않게 해 새로운 곳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오블리비언에서는 세계 탐험이 연금술 재료에 대한 접근을 낳고, 재료가 플레이어의 연금술 스킬에 대한 실험을 돕는 피드백 루프가 있습니다. 그리고 연금술 스킬 시스템의 탐험은 플레이어에게 공간 탐험을 수월하게 하는 포션을 제공합니다.


이런 피드백 루프가 있는 또 다른 게임으로 스파이더맨 2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지난 몇 년간의 게임 중 좋아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스파이더맨 2에서 얇게 분포된 보상은 히어로 포인트입니다. 히어로 포인트는 수집품을 찾는 것부터 사이드 미션을 완수하는 것까지, 게임에서 하는 거의 모든 행동에 부여되는데요. 그다지 가치는 없습니다. 업그레이드 하나를 사려면 보통은 수백 포인트가 필요하거든요. 말하자면 히어로 포인트는 이 게임의 주된 재화이고 어디에나 있습니다.


히어로 포인트를 모으면 스파이디 스토어라는 곳에서 새로운 기술과 콤보를 해제하거나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 점프 높이 등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 파워업들을 해제하면 세계를 더 빨리 탐험할 수 있고, 히어로 포인트를 더 모을 기회가 늘어납니다.


이 게임에도 공간 탐험과 스파이더맨의 능력 시스템 탐험 사이에 양의 피드백 루프가 있는 것이죠.

스파이더맨



게다가 스파이더맨은 참 멋진 캐릭터입니다.


모두 스파이더맨의 기원에 대해선 잘 아실겁니다.


성인이 되면 게임 개발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고등학생 너드 피터 파커가 과학 실험을 보러갔다가 방사능 거미에 물리게 되죠.


그는 거미에 물린 뒤에 놀라운 힘을 얻게 되고 범죄와 싸우게 됩니다...


네, 네, 그렇게 단순한 건 아니었죠. 우리가 익히 알고 사랑하는 범죄와 싸우는 스파이더맨이 되기 전, 피터 파커는 신문에 난 광고를 보고 아마추어 레슬러가 되었습니다.


피터는 그 힘을 과시하고 돈도 얻고 다른 사람 위에 설 수 있단 걸 알았죠.


사실, 피터 파커는 방사능 거미에 물려서 스파이더맨이 된 게 아닙니다. 그 사건은 그를 빨갛고 파란 타이즈를 입은 터프한 놈으로 만들었을 뿐이죠.


피터 파커를 스파이더맨으로 만든 건 다른 사건이었습니다. 어느 날 공연을 하고 돈을 받은 피터 파커는 강도가 범죄 현장에서 도망가는 걸 지켜보기만 합니다. 자신의 힘을 사용해 쉽게 강도를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죠. 누가 뭘 하라고 시키는 것에 진저리가 나있었기 때문에 강도가 도망치는 걸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날 밤, 그 강도는 체포를 피하는 과정에서 피터의 삼촌 벤을 쏴서 죽입니다. 피터는 스파이더맨이 되어 강도가 처벌을 받도록 하고, 그 이후로 자신의 무위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른다.

이것이 그날 밤 피터 파커가 배운 교훈이었습니다. 방사능 거미가 아니라 바로 그것이 스파이더맨을 스파이더맨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2의 피드백 루프는 게임의 시스템과 공간을 더 잘 탐험하도록 해주는 데 더해, 압도적인 책임감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궁극적으로 느끼게 해주었을까요? 영화를 봤을 때나 만화를 읽었을 때처럼 말입니다. 액션과 싸움, 스턴트, 모험도 멋지지만, 스파이더맨을 상징으로 만드는 것은 그 책임감입니다. 그러니까, 게임에도 역시 그런 것이 있겠죠?


없었습니다.

먼저, 이 게임을 만든 분들에게 사과부터 하죠. 이전에 게임을 즐겁게 했다는 말을 전하기는 했는데요. 스파이더맨 게임에서 책임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면, 전혀 스파이더맨이 나오는 게임이 아닙니다. 빨갛고 파란 타이즈를 입은 터프한 놈이 나오는 게임이죠.


사실, 어떻게 보면 스파이더맨의 정체성에 매우 중대한 해를 입혔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에 이미 있는 것들도 물론 중요합니다. 사실 책임감이란 주제만큼 중요하죠.



하지만 그 모든 게 존재해야 스파이더맨입니다. 스파이더맨에는 그 모든 게 존재해야 합니다.

자기 탐험


그게 제가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두 종류의 탐험으로 구성된 이 피드백 루프에 세 번째 종류의 탐험을 포함시키는 또 다른 요소를 넣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책임을 탐험할 수 있는 스파이더맨 게임을 원합니다.


물론 ‘책임’만 탐험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정직을 탐구할 수 있는 아브라함 링컨 게임도 만들 수 있습니다.


아니면 동정을 탐구하는 게임은 어떤가요?



용맹은요?



정의는?



희생?



명예?



영성?



겸양?

잠깐만요...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작년에 게임 개발자 불평대회(Game Developers Rant)에 나온 게 누구였죠? (역주: 매년 GDC에서 여러 게임 개발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게임 업계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는 세션. 다른 여느 세션보다도 더욱 강하게 자기 주장을 설파하는 자리다. 2006년 불평대회에서 조나단 블로우는 ‘인간 조건’을 다루는 게임이 늘어나야 한다며 울티마 IV를 그것을 시도하고 이루어낸 예로 들었다.)


맞습니다, 이건 이미 작년에 조나단 블로우가 작년에 벌려놓은 주제입니다. 저기 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블로우의 생각을 훔친 셈이죠.

이 사진이 재밌는 점이 뭔지 아시나요. 프랑크와 시무스 사이의 M 모양 구도를 보세요. 그리고 제인이 취하고 있는 기묘한 손짓을 봐요. 왼쪽 끝은 크리스 헤커입니다. 우리에게 게임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하며 예수처럼 우리를 구원하러 온 것 같았던 크리스 크로포드에게서 고개를 돌리는 게 유다 같네요.

이 모든 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확실한 건 저 유리잔은 성배라는 겁니다. 그리고 크리스 크로포드가 예수든 아니든, 그는 틀렸습니다. 게임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뭐든 골라보세요.


어쨌든, 조나단 블로우는 이미 플레이어가 그런 가치들을 탐험할 수 있는 게임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습니다. 바로 울티마 IV라는 게임입니다. 그 가치들 중 한 가지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룬 게임입니다.


그리고 22년 전에 출시된 게임이죠.

어떤 분은 울티마 IV가 스토리는 그렇긴해도 실질적인 메커닉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울티마 IV에 나타난 미덕은 모두 게임의 메커닉과 역학으로 재현되어있습니다.


가령, 걸인에게 돈을 줌으로써,  같은 동물처럼 ‘사악하지 않은’ 생물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동정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또 몬스터를 먼저 공격함으로써 용맹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서 도망칠 경우 용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울티마 IV에서 배워야 하는 모든 미덕은 하나하나가 수량화 가능한 행동들에 연계되어 있고, 행동은 미덕 별로 겉으로 보이지 않는 점수를 늘리거나 줄입니다.

한 가지는 분명히 하죠. 우리는 정직 같은 개념에 대한 이해를 말 그대로 깊고 매혹적인 방식으로 탐험하는 게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울티마 IV는 그 점을 잘 해내지 못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정직을 올린 방법은 시약 상인에게 웃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정의를 올린 방법은 시약 상인에게 웃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명예를 올린 방법은 시약 상인에게 웃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꽤 취약한 디자인이죠. 120골드 가치의 피 이끼를 150골드에 팔 때 저는 진정 정직이나 명예, 정의를 느껴보지는 못 했습니다.


잠시 3D 던전으로 가보죠. 그런데 울티마 IV에 있는 유사 3D 던전은 그다지 3D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3D 공간 속 움직임이라는 관념을 향한 손짓 같은 것이었죠.


우리 업계는 정직이나 겸손을 둘러싼 개념 공간과 상호작용하고 탐험하는 방식의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대신, 지난 20년을 3D 던전을 더 좋게 만드는 길을 걸어왔습니다.


걸어오는 길에 강한 힘에는 강한 그래픽이 따른다는 교훈을 얻고선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은 겁니다.

그래픽이냐 게임플레이냐 하는 해묵은 논쟁을 반복하진 않을 겁니다. 끝내주는 그래픽이 있는 것에 반대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 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면 나중에 바에서 만나 이야기해보죠.

20년 전에 무얼 할 수 있었고 무얼 했어야 하는지 말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걸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20년 전으로 돌아보고 이 오래된 문제들을 다시 캐내서 만회하려고 한다면...정확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울티마 IV가 잘 한 것


울티마 IV가 잘 하지 못 한 것들을 조금 살펴봤는데요. 하지만 보다 잘한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정직과 정의, 명예의 메커닉이 그 관념들을 의미 있게 탐험하도록 하지 못 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럼 다른 미덕을 살펴보죠.

동정과 용맹, 희생의 미덕은 모두 전투에서의 행동과 관계된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몬스터가 공격해오기 전에 먼저 공격하면 용맹이 증가합니다. 하지만 사악한 몬스터가 여전히 살아있는데 전투에서 도망치면 용맹이 감소합니다. 동물처럼 사악하지 않은 생물이 공격자 사이에 섞여있을 때, 그것들을 죽이면 동정이 감소합니다. 전투에서 도망칠 수 밖에 없을 경우, 아바타가 마지막에 도망치지 않는다면 희생이 감소합니다.


복잡하게 들리는데...복잡한 거 맞습니다. 요점은, 그 규칙들이 다른 것과 대립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사악한 몬스터와 사악하지 않은 생물이 섞여있는 전투는 어떻게 될까요? 도망치고 용맹을 잃어야 할까요, 아니면 싸우는 중에 동물을 죽여 동정이 낮아질 위험을 안고 계속 싸워야 할까요?

드문 경우긴 합니다. 그런데 제가 그런 대립에 직면했을 때, 저는 제가 그 미덕 간의 대립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게 간신히 이 게임에 있어요. 치과의사가 마취된 입안을 찌르는 느낌과 비슷해요. 의사가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는 있고, 고통스러울 거라는 것도 알아요. 그런데 실제로 고통스럽진 않습니다.

어쩌면 울티마에서 울티마의 개발자들이 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울티마에선 거만하게 말하지 않으면 겸양을 늘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비병이 나에게 당신이 가장 용맹한 전사인지 물으면, ‘아니다’ 라고 답해야 겸양이 늘어납니다.



겸양을 늘리는 방법이 용맹 같은 다른 미덕을 부정하는 것이라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실제로 제가 플레이하며 그 점을 느끼기 때문이죠. 제가 가장 용맹한 전사라면 내가 가장 용맹한 전사라는 말을 당연히 하고 싶죠. 긍지 없는 용맹이 있겠습니까?


앞서 시스템 탐험이 흥미로운 건 그것이 발록과 달심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의문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자기 탐험은 그것이 무하마드 알리와 간디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같은 의문에 답하도록 도울 때 흥미롭습니다.


웃으셔도 좋습니다. 저는 진지합니다.

만약 알리가 그랬던 것처럼 긍지로 용맹을 연마하여 상대를 위협할 수 있음을 플레이어가 느낄 수 있는 게임을 디자인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겸양의 미덕에 반한다는 점도 넣게 될 겁니다. 여기서부터 출발해봅시다.

플레이어가 진정 이런 것들을 느끼고 이해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다음의 네 단계를 밟아야 합니다.

  1. 가치를 메커닉 안에서 표현한다
  2. 대립하는 가치가 동등하도록 한다
  3. 그 대립이 내적으로 경험되도록 한다
  4. 대립하는 가치를 역학에 넣는다

경계 정하기



탐구하려는 가치를 메커닉 안에서 표현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울티마 IV가 20년도 더 전에 이걸 아주 잘 했고, 오늘날에는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하마드 알리가 뭘 할 수 있는지만이 아니라 알리가 누구인지도 담아내는 알리 복싱 게임을 만든다고 해봅시다.

이 게임에서 용맹은 긍지로 연마할 수 있고 그것은 겸양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보죠.


게임 속에 용맹과 겸양 두 가지 수치가 존재한다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용맹 수치는 힘, 리치, 강인함, 스태미너 등의 공격적인 능력을 나타냅니다. 겸손 수치는 대중(즉, 관중)이 얼마나 자신과 공감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관중의 호응, 매체의 관심, 몸값 같은 것들과 연계되죠.

거친 말을 해서 언론을 들끓게 하고, 사람의 관심을 끌어 용맹에 도움을 주는 긍지는 상대를 위축시킵니다. 동시에, 거친 말은 즐거움을 주긴 하지만 대중과 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이 가상의 알리 게임에서 언론에 말하는 행위는 완전한 구조를 지닌 미니게임 같은 것이어야겠죠...지금 여기서 그 디자인을 고안해내진 않을게요. 중요한 건 세 가지 개념을 구조적으로 정립하는 방식입니다.

탐험할 수 있는 가치들이 모두 동등하도록 한다는 것은 대립하는 가치 중 어느 것을 선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플레이어에게 선과 악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건 쉽죠. 그 결정 자체에는 대립이 없습니다. 플레이어는 완전히 선하거나 완전히 악한 쪽을 선택하게 되고, 거기에는 미묘함이 없습니다. 탐험도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자기를 탐구할 이유나 여유도 없습니다.

울티마의 8대 미덕이 특정한 상황에서 서로 대립하는 건 어떤 것에 더 가치를 둘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립을 플레이어가 내적으로 경험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부분에 취약한 것은 내적 대립을 만드는 방법을 다른 매체에서 배웠기 때문입니다.

피터 파커를 예로 들어보죠. 강도를 보냈을 때 그에게는 내적 대립이 없었습니다. 긍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으니까요. 그는 자신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 했습니다.

관객과 독자에게도 대립은 없습니다. 그가 긍지를 느끼길 바라지는 않았으니까요.

사실, 여기서 존재하는 대립은 인물과 독자 사이의 대립입니다. 서로 관점이 다른 데서 오는 대립이죠. 독자는 피터가 실수를 저지른다는 점과 그가 그걸 막을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비극이죠. 피할 수 있어야 하는데 피할 수가 없습니다.

독자가 주인공이 알지 못 하는 걸 보거나 아는 것에 의존하는 기법은 게임에서 통하지 않는 기법이고, 이런 걸 계속 사용해오면서 예측 가능한 줄거리라고 비판을 받죠. 플레이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숨기지 마세요. 의미 있는 게임플레이 경험은 선택에서 오지, 놀람에서 오지 않습니다.

메커닉을 대립으로 이끄는 역학의 디자인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건, 가치들을 역학 시스템 속에서 대립하도록 이끄는 방법입니다. 울티마 IV는 미덕을 전투에서 대립하도록 했습니다.


여기가 플레이어가 실제로 그걸 느끼는 유일한 부분입니다.


가상의 알리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결국 조지 포먼을 상대하게 됩니다.


포먼은 자이르의 체육관에서 무거운 샌드백을 계속 두들기며 시간을 보낼 겁니다. 그는 자신의 용맹을 계속 연마하며 점점 더 강해집니다.

동시에, 그는 사람들에게서 고립됩니다. 누구도 그를 보지 않습니다. 누구도 그를 알지 못 합니다. 누구도 그를 응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알리는 이미지를 관리하려고 언론을 대하는 데 시간을 보내야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을 위축시키기도 해야 합니다. 또 이미지를 유지하는 작업도 해야 하죠. 겸손하면 인기를 얻습니다.


만약 조지 포먼이 자신을 8라운드까지 죽도록 두들기도록 해서 지치게 만드는 계획을 세운다면, 최후의 스트레이트를 날릴 때 5만 명의 관중이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죠.

결론


이게 좋은 디자인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나와서 울티마 15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윤곽을 그린 겁니다. 손짓이에요. 울티마 IV의 3D 던전이 3D를 향한 손짓이었던 것처럼요.


저는 지난 2년 동안 시스템 탐험과 공간 탐험이 서로에게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을 디자인해보며 그런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자신과 자신의 기분, 생각을 탐험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바닥부터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20년도 더 전에 누군가 이 길에 첫 걸음을 내디뎠다는 걸 알고 놀랐습니다.


제가 오늘 한 것이 지금은 인적이 없는 길을 더듬어 본 것이라면, 적어도 같은 문제로 고민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진전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에 생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탐험가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요.

우리는 우리를 표현하고, 동시에 플레이어가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탐험하고 표현할 수 있게 하는 이 놀랍고 새로운 매체를 아직 밝혀나가는 중입니다. 우리는 이 새로운 매체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결정할 힘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강한 힘에는 강한 책임이 따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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