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8일

밸런스 오브 파워, Ⅱ-가. 반란의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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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마다 찾아오는 밸런스 오브 파워의 제작과정입니다. 시스템 디자인에 대한 설명에 이어, 반란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설명이 추가로 이어집니다.



※ 제가 정치/역사 전문가가 아니니, 잘못된 용어나 표현 발견하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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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반란의 성적표

반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반란은 성공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반란은 실패하며, 오히려 망신만 당한다. 물론, 가망 없는 일에 무기를 들고 일어설 만큼 미친 인간들은 항상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이자 국방성 컨설턴트인 제임스 더니건은 그의 책 <간편 전쟁 안내서>(A Quick and Dirty Guide to War)를 통해, 최근 미국에서 정치적인 폭력을 낳은 열여섯 가지 움직임을 기술했다. 각각을 반란이라고 이름 붙여볼 수도 있지만, 아주 낮은 수준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반란은 절대 일시적인 폭발 이상을 넘어가질 못 한다. 경찰이 그들을 둘러싸고 총으로 쏘거나 감옥에 가두면 나머지는 기가 죽어 포기한다. 세계의 어떤 정부에 대해서도 왠만한 정도의 반란은 무의미한 테러리즘 이상 넘어가는 것을 보기 힘들다. 지난 40년간 테러가 얼마나 발생했는지 나타내는 자료는 찾을 수는 없었다. 테러리즘의 공허한 성질을 봤을 때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래 지난 40년간, 약 200여건의 반란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 눈에 띄는 사상자를 냈다. 물론 그 중 40건(20%)만이 반군의 승리로 끝났다. 80%의 경우는 정부가 게릴라전이나 내전에서 승리했다.

이 40년간 있었던 반란들로 대략 4200만명의 사상자(사망, 부상, 실종)가 발생했다. 이 수치의 대부분은 1945년에서 1949년에 있었던 중국 내전이 만들어낸 3000만의 사상자이다. 그 다음으로 큰 사상자가 발생한  것은 인도차이나(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전쟁으로 대략 800만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나머지 400만은 곳곳에서 전개된 더 작은 반란들에 분포되어 있다.

나. 반란의 군사적 요인

반란은 반군과 정부 모두에게 특별한 문제를 안겨다 준다. 게릴라 전은 전통적인 전쟁과는 전혀 다른 양식으로 전개된다. 게릴라 전의 특별한 문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전통적인 전쟁에 대해 알아보자.

전통적인 전쟁의 핵심 문제는 이성적인 인간이 목숨을 걸고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노래로는 용기와 자기희생을 제창할지는 몰라도, 피와 죽음이 교차하는 실제 세계에서,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무기를 버리고 도망갈 것이다. 지휘관은 어떻게 이성적으로 자연스러우면서도 달갑지 않은 행동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 해법은 아주 강한 사회 집단을 만들어 구성원간의 결집력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군대의 이상한 관습과 가치는 모두 이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제복, 행진, 깃발과 전통, 이 모든 것들은 집단으로서의 강력한 정체성을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한다. 그 결집력이 충분히 강하면, 병사들은 혼자가 되기 보다는 전장에 남아 동료들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병사가 그가 속한 집단과 함께, 혼자가 아닌 그 집단의 분명한 구성원으로서 싸울 때 가능한 것이다. 이를 역이용한 방법이 바로 상대의 사회적 결집력을 약화시켜 승리를 이루려는 발상이다. 상대 병사들에게 충격을 주어 도망가게 할 수 있다면 전부를 죽이는 것보다 싼 값에 승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유혈사태를 피하는 것은 군사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데서 오는 부수적인 결과다. 이 사고방식은 전통적인 전투의 표준적인 형태가 되었고 치밀하게 짜여진 고밀도의 전투 방식으로 이어졌다.

반군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부대가 그런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치밀하게 짜여진 전투는 장비를 더 잘 갖춘 쪽에 어울리는데, 반군은 항상 장비에서 뒤진다. 소총으로 포와 탱크와 폭격에 맞서는 것은 미친 짓이다. 두 번째 이유로, 반군 투사들은 정부군에 비해서 훈련량도 적고 그 질도 낮다. 정부는 안전한 곳에서 시간을 들여 병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데, 반군 병사들은 보통 주먹구구식으로 훈련한다. 세 번째로, 보통 반군은 정부군보다 수적으로 열세이다. 치밀하게 짜여진 전투에서 "신은 더 큰 부대를 가진 쪽 편을 든다."

이런 이유로, 반군 지도자들은 몇 세기에 걸쳐 반군이 가진 장점을 가장 잘 살려낼 전혀 다른 양식의 전투를  고안해냈다. 반군에게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바로 '동기가 부여된 병사들'과 '주도권'이다.

게릴라가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 싸우게 한다는 정부의 흑색선전에 동기가 빛이 바라는 경우가 있고, 실제로 그런 납치가 일어난 적도 있지만, 어떤 반군이든 그 부대는 높은 동기가 부여되어 있다. 게릴라가 동료들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보복에 대한 공포가 정부군 병사들이 가진 것보다 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군은 집단 정체성보다는 대의를 일체화시키는 방법에 의지한다. 이 방법의 이점은 병사들이 집단의 구성원보다는 개인으로서 싸우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전투 중에 게릴라 부대의 밀도를 낮게 할 수 있고, 부대가 흩어진 형태로 전투에 임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의 구정공세에서 베트콩 투사들은 사이공과 휴 같은 주요 도시들 깊숙이 들어가 전투를 치루었다. 그들은 조직화된 상태로 도시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소수의 그룹으로 나뉘어 침투한 뒤 싸움을 벌였다. 정부군 병사들에게는 그런 주도권과 열정을 보일 정도의 신뢰가 없다.

반군의 또 다른 이점은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이다. 반군 지도자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싸울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정부의 지휘관은 앉아서 반군 지휘자가 움직이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방어란 그 가장 취약한 부분만큼 강하다. 즉, 모든 방어선은 약점을 가지고 있다. 반군 지휘자는 그 약점을 찾아서 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반군 지휘자는 작은 승리를 하나씩 쟁취하면서 조금씩 정부군을 쳐내고, 그들이 약해질 수록 자신은 강해진다.

그런 식으로 전초기지에 대한 치고 빠지기 공격, 간접 습격[nuisance raid], 야간 교전 같은 게릴라 전략이 진화해왔다. 게릴라들은 그 힘을 흩어뜨려, 정부의 영역에 침투하여 갑작스럽게 목표에 집중공격을 퍼붓고, 파괴를 끝내면 다시 갑자기 흩어진다. 그들이 지역을 점령하거나 일시적인 우위를 갖지 않는 한은 정부가 공격하기 좋게 큰 집단으로 뭉치는 일은 없다.

이 전략에 대항하여 정부는 반군을 상대하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많은 실험을 통해 많은 것이 실패했다. 아마 가장 대단한 실패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화력으로 밀어 붙이려고 했던 것일 것이다. 미국군은 게릴라를 상대할 때는 포탄과 네이팜, 에이전트 오렌지를 쏟아붓는 것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힘들게 배웠다. 게릴라 군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구식의 평범한 보병부대가 필요한 듯 하다. 하지만 반군을 상대로 성공적인 승리를 거둔 경우도 있다. 말레이시아 반란의 실패가 자주 인용되는 예이다. 당시 정부의 최우선 전술은 마을을 군사적, 정치적으로 확고히 함으로써 반군이 유지되기 어렵게 하는 것이었다. 최소한, 시도는 되었다. 그 목표는 야심이 너무 커서 뜻대로 되지 못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결국 말레이시아 반란은 베트남 전쟁의 수준만큼 발전하지 못 했다. 아마 말레이시아 정부의 전술은 낮은 수준의 반란에만 효과적일 것이다.

반군을 상대하는 다른 기술로 소비에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개발한 것이 있다. 고전적인 '망치와 모루' 전술을 변형한 것인데, 기동성 있는 부대(망치)가 정적인 부대(모루)가 있는 곳까지 적군을 끌고 가는 것이다. 이 전술에서 소비에트는 헬리콥터로 기동성 있는 보병부대를 운용했다. 무자히딘이 공격을 개시하면, 공중 기동 보병이 재빨리 게릴라의 탈출 경로 근처로 이동한다. 그러는 동안 정규군은 후퇴하는 무자히딘의 군대를 쫓는다. 이게 통하면, 무자히딘 군은 공중 기동 보병에 막혀서 함정에 빠지고 망치와 모루 사이에서 파괴된다. 이 기술의 성공은 헬리콥터의 기동성과 아프가니스탄 지형의 넓은 시야에 빚을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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