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7일

워크래프트 제작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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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와이엇 | 2012년 8월 15일 | 원문보기

[역자의 말: 워크래프트의 프로듀서이자 리드 프로그래머였던 패트릭 와이엇이 쓰는 워크래프트 제작기 그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는 초기 게임 디자인 과정과 일정의 어려움으로 잘라내야 했던 것들, 워크래프트 특유의 화려한 아트 스타일이 형성된 계기를 이야기합니다.]

지난 1부에서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를 정의하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게임 회사 중 하나로 이끌어준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시작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워크래프트》는 어떻게 아이디어에서 완전한 게임으로 만들어졌을까? 말해두는데 구상에서 출시까지 곧은 길은 아니었다. 다른 게임들처럼 아이디어는 논쟁되고 검증되고 논쟁되고 변화하고 논쟁되고 재검증되었고 일부는 결국 죽이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디자인이 발전했다.

그 과정에서 굉장히 많은 논쟁이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을텐데, 논쟁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때로는 인신공격으로 변질되며 악감정을 남기고 사과해야 할 때도 있지만, 생각이 유지되는 토론은 제대로 연마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는 심지어 불일치 속에서도 동지의식이 베어있었다. 우리는 함께 일했고, 함께 플레이했으며, 함께 파티를 했고, 전시회 때는 호텔방 하나에 열 명이 함께 자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함께 살았다. 나는 다른 블리자드 친구들과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 곳곳에 있는 기숙사형 주택 중 한 곳을 함께 사용했었다.

초기 제안

내가 워크래프트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블리자드는 최소한 네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회사 직원이 20명 뿐이라 모두 그 프로젝트들을 굴러가게 하느라 굉장히 바빴었다. 아티스트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가 한 번에 두 개, 심지어 세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물론 유일한 음악가이자 사운드 엔지니어였던 글렌 스태포드는 모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하지만 우리는 정기적으로 크게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회사 전략을 논의할 시간만큼은 마련했다. 우리는 그런 방식을 두고 “그날의 사업계획”이라 부를 정도였다.

우리가 《듄 2》를 원형으로 실시간 전략 게임(real-time strategy, RTS)을 만들게 된 동기는 이전의 글에서 이미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를 앞으로 이끈 핵심 아이디어가 하나 더 있었다.

우리가 게임을 만들도록 이끈 다른 동력은 회사의 사장이자 공동 창업자인 앨런 애드햄이 어느 날 브레인스토밍 중에 한 제안이었다. 그는 “워크래프트”라는 표제 아래 거의 비슷한 외양의 흰 상자로 출시되는 전쟁게임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했다. 각각의 게임에는 ‘로마 제국’, ‘베트남 전쟁’ 같은 식으로 역사적 배경을 나타내는 부제가 붙어있는 것이다.

상자를 동일한 디자인으로 하는 건 1980년대 후반에 커다란 성공을 누렸던 SSI의 골드 박스 시리즈처럼 선반 자리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해 북적대는 소매시장에서 플레이어의 눈에 쉽게 띄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새로운 플레이어는 선반을 독차지한 압도적인 모습에 눈길을 줄 것이고, 이미 게임을 하나 즐긴 베테랑 플레이어는 다음 게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도 안다. 앱스토어와 아마존에 비하면 소매시장이란 얼마나 구닥다리인가?!?

[SSI의 골드 박스 시리즈]

회사에서 초기부터 일한 아티스트 론 밀라와 샘 디디에는 역사 시뮬레이션을 만든다는 구상에 흥이 나지 않았다. 그들은 워해머와 던전 앤 드래곤 같은 판타지 게임을 즐겨왔었다. 샘의 그림을 조금만 봐도 판타지에 대한 열정을 알아보기에 충분하다. 때문에 그들은 다음 회의에서 첫 게임의 배경을 오크와 인간이 나오는 하이판타지 세계로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역사적 정확성에 구애받지 않고 더욱 독창적인 아트윅을 만들 기회가 많을 것이었다. 그 아이디어는 받아들여졌고, 시리즈의 첫 게임은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이 되었다.

초기 게임 디자인

많은 사람들이 한 명의 게임 디자이너가 모든 아이디어 구상과 실질적인 ‘게임 디자인’을 책임진다고 믿으며, 이는 어떤 개발 팀에서는 사실일 수도 있다. 디자이너들은 그 개인이 고도로 창조적이어야 하며 게임의 많은 요소들을 구체화해야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에게는 다른 이들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하다. 게임의 디자인에 어느 정도 관여하지 않는다면 팀의 다른 사람들이 최선을 다할 동기는 보다 적어진다. 그리고 그게 아니어도 훌륭한 디자인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올 지 알 수 없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의 좋은 아이디어가 잠들어 있지 않도록 귀기울이는 일은 중대하다.

《워크래프트》 초기 개발 기간의 형식에 얽메이지 않는 디자인 과정은 그런 면에서 효과적이었다. 복도에서의 만남과 점심, 흡연, 늦저녁 게임 시간 이후에 수많은 브레인스토밍이 일어났다.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보탰다. 형식적인 과정은 최소화하고 한 건의 디자인 문서도 만들지 않은채 게임 디자인은 달마다 발전해갔다.

아티스트로 게임 업계 경력을 시작했던 론은 당시 블리자드 게임에서 디자인하면 통하는 남자였다. 그는 슈퍼 닌텐도용 횡스크롤 슈팅 게임인 《블랙쏜》의 개발을 마무리하고 있었지만 《워크래프트》의 아이디어를 짜는 데도 시간을 들였다.

스튜 로즈는 블리자드 초기부터 일한 또 다른 아티스트였다. 성격으로 볼 때 그는 론과 대부분 측면에서 극과 극이었고, 그가 디자인에 참여할 때는 론의 견해와 대립을 이루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논파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만은 동의했다.

둘은 결국 전체 디자인 과정을 양 끝에서 받치게 되었다. 두 사람은 개별적으로 일하며 세계의 문화와 전체 줄거리의 개발, 게임 유닛들의 정립, 플레이 메커닉 구체화, 마법 주문의 원리 구상, 게임 미션 개발, 지명 선택, 그리고 사소하지만 게임에 생명을 불어넣는 데 중요한 것들을 마무리했다.

지금에 와서는 팀 전체를 모아놓고 오래 전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서로의 주장을 정리하지 않는 한 누가 정확히 어떤 아이디어를 개발했는지 입증할 수 없다. 당시에도 우리는 게임 디자인 크레딧을 어떻게 나눌 지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가장 공정하고 가장 평등하게 모두를 기록하기로 했다. 때문에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의 패키지 크레딧에는 “게임 디자인: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Game design by Blizzard Entertainment)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모비게임즈에 기록된 크레딧은 훨씬 나중인 1998년에 출시된 매킨토시판과 1994년의 DOS판을 섞어놓았기 때문에 완전히 엉망으로 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의 크레딧이 잘못 표기되어 있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흐릿하지만, 날짜는 1994년으로, 이름표는 “카오스 스튜디오”라고 붙여진 초기 디자인 문서를 최근 보게 되었다. 회사가 블리자드라는 이름으로 바뀌기 전인 1994년 초에 작성되었다는 뜻이다. 1994년 2월에 우리는 여러 번의 반복을 거쳐 게임의 핵심 개념을 담은 (그래도 여전히 개략적인) 디자인 문서들을 마련했다.

내가 1993년 9월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기 전에 디자인이 나와 있었으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질적인 게임 재미 부분이 개발될 수 있기 전까지 내가 만들어야 했던 ‘배양기’의 양을 생각하면 그 단계에서 디자인의 부재는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특히나 이미 많은 게임 요소를 《듄 2》에서 끌어왔기에 더 그랬다.

잘라낸 것들

오늘날에도 (간신히) 《워크래프트 1》을 플레이하는 건 가능하지만 이후의 RTS 게임에 비해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게임을 오늘날의 컴퓨터에서 돌려보면 단 320×200 픽셀(현대의 고해상도 모니터의 20분의 1)의 해상도와 우리의 이후 게임들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지는 인터페이스와 밸런스를 보면서 높은 기대가 산산히 무너진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1》을 플레이해보면 디자인 선별 과정에서 게임의 최종 출시까지 어떤 아이디어들이 살아남았는지 볼 수는 있다. 많은 부분에서 《워크래프트 1》은 시리즈 이후 게임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게이머들도 이후의 워크래프트 게임에서 살아남은 병영과 마을회관, 제재소 같은 유닛에 친숙하다. 그런 상징적인 유닛들이 살아남은 것은 아제로스가 아닌 현실에 사는 우리들도 그 이름과 기능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기 디자인 문서에 포함된 많은 아이디어들이 결실을 맺지 못 했다. 이 중 일부는 1994년 크리스마스에 게임이 나와야 했던 혹독한 일정과 관계가 있다. 우리는 일정을 간신히 맞췄다. 그 외에도 더 나은 대안이 존재했거나 강력한 대변자가 없었거나 구현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거나 너무 많은 메모리가 필요했거나 재미있지 않았던 아이디어들이 죽었다.

잘려나간 아이디어들로는 ‘석공의 집’(석재 건물에 필요)과 ‘드워프 여관’(석재를 대량으로 생산), ‘엘프 화살 장인’(궁수 업그레이드), ‘세무서’, ‘맥주집’이 있다.

이 건물들은 기능이 모두 부차적이었고 어떤 기능은 다른 건물에 합할 수 있었다. 우리는 드워프 여관과 엘프 화살 장인처럼 한 가지 기능만 수행하는 건물을 만드는 대신 그 기능을 기존의 건물에 추가했다.

석공의 집을 뺀 것은 석재를 (금과 목재에 더해) 3차 자원으로 쓰는 게 불필요하게 복잡하다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 2》에서 다시 살리는 안을 생각했지만 실제로 구현(프로그래밍)해보고나서 빼버렸다.

맥주집은 병사와 금의 생산율을 높이는 용도로 설계했었다. 현실 세계에서 밤새 술을 마신 다음 날에 해낼 수 있는 작업량을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제로스에는 특별한 마법의 규칙이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아니면 그래서 이 아이디어를 빼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자드 맨과 홉고블린, 하플링 같은 NPC 종족도 계획 단계에는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빼버렸다. 디럭스 페인트에서 인물을 그리고 움직이게 하는 데 드는 노력 때문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게임 개발은 선택이다. 위대한 게임은 모든 걸 하지 않아도 된다. 몇 가지만 잘 하면 된다.

대형

많이 논의되었지만 결국 구현되지 않은 디자인 아이디어로 유닛이 전장에서 뭉쳐서 움직이는 ‘대형’이 있었다. 대형은 구현하기가 어려워서 빠졌다.

구현을 복잡하게 만든 요인이 몇 가지 있었다. 먼저 대형의 유닛들이 모두 동일한 속도로 움직여서 느린 유닛이 뒤쳐지지 않는 것, 이것은 프로그래밍의 복잡성을 늘렸다. 그리고 파이크를 든 보병과 뒤따라오는 궁수로 구성된 대형이 북쪽으로 향하다 동쪽에서 접근하는 적 파견대에 맞설 경우, 궁수들은 그대로 보병의 보호벽 뒤에 줄선채 집단으로 회전(혹은 군사용어로 “선회”)할 수 있어야 했다. 이것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의 복잡성을 늘렸다. 시간이 충분했으면 구현할 수 있었겠지만 더 기본적인 기능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써야했다.

그 대용으로 나는 ‘숫자 그룹 선택’을 구현했다. 사용자가 유닛 그룹을 선택하고 컨트롤 키와 숫자 키(1~4)를 누르면 그 유닛 그룹 구성이 기록되고, 이후 해당하는 숫자 키(1~4)만 누르면 그 유닛들이 다시 선택되는 기능이다. 하지만 그룹으로 선택되어도 유닛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전장의 플레이어 캐릭터

많이 논의되었지만 결국 구현되지 않은 또 다른 아이디어는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유닛이 게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즉 미션에 미션을 거치면서 성장하는 아바타를 넣는 안이었다.

성장하는 감각을 이끌어내려면 플레이어를 대변하는 게임 아바타가 약한 유닛에서 강대한 영웅으로 변화해야 한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캐릭터가 활용될 때만 더 강해져야 한다. 활용되지 않은 아바타는 약한채로 남아있는 반면 꾸준히 전선에서 활약한 아바타는 더 강해지는 것이다.

한 유닛을 한 미션에서 다른 미션으로 계속 데리고 가는 건 미션의 밸런스를 잡는 데 어려움을 주었다. 뛰어난 플레이어는 미션마다 아바타를 크게 성장시킬 것이고, 그 아바타의 힘은 이후의 미션을 쉽게 만들 것이다. 반면 솜씨가 부족한 플레이어의 아바타는 후반 미션을 이기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약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 모두 플레이어를 게임에서 소외시킬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는 도전감각이 부족해지고, 두 번째 경우에는 당혹스러워진다. 게임 후반 미션에서 살아남으려고 이전 미션들로 돌아가서 다시 플레이하고 싶은 플레이어는 별로 없다.

《워크래프트》 출시 몇 년 뒤 나온 《워 윈드》(War Wind)라는 이름의 게임은 유닛을 미션에서 미션으로 데리고 갈 수 있게 했다. 이 게임의 디자이너들은 최대 네 기의 유닛까지 데리고 갈 수 있게 했는데, 이 유닛들이 게임플레이에 영향을 미칠 만큼 강해지지 않도록 하여 밸런스 문제를 처리했다. 어느 정도는 영웅적인 플레이어 아바타를 생각하는 일반적인 관념의 안티테제라 할 수 있다.

《워크래프트 1》에 영웅이?!?

우리는 《워크래프트 1》에 영웅 유닛을 넣는 것도 고려했었다. ‘환영 도적’이나 ‘야만용사’, ‘사냥꾼’, ‘저거넛’ 같은 이름에 특별한 기술도 마련했었다. 결국은 게임 유닛의 종류를 상당히 줄이게 되었는데, 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상의 시간 제약 때문이었던 것 같다.

《워크래프트 III》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은 입장에서 영웅이 드디어 시리즈에서 구현되는 모습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워크래프트 III》의 영웅은 《워크래프트 1》의 디자인 문서에서 가져온 게 아니고 다른 기원이 있었다.

간략히 말하면, 《워크래프트 III》는 《히어로즈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히어로즈 오브 워크래프트》는 이미 우리가 다섯 번(워크래프트 1, 워크래프트 2: 어둠의 물결, 워크래프트 2: 어둠의 저편, 스타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브루드 워)이나 만든 전통적인 유형의 RTS가 아니라 워크래프트 세계를 배경으로 한 분대 전술 게임이었다. 이 게임 개발 절반 쯤에 팀장들이 바뀌었고 좀 더 전통적인 RTS로 변형되면서 영웅 요소는 유지하게 된 것이다.

《워크래프트》의 밝은 색상 팔레트

어두운 방에서 봐야 진정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디아블로》 같은 게임에 비해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아트윅은 색상이 극도로 화려하다. 그 밝고 만화스러운 아트 스타일은 더 사실적인 색상 팔레트를 찍는 당시 다른 많은 PC 전쟁 게임의 스타일과 달랐다.

그 차이는 우리 아티스트들이 슈퍼 닌텐도와 세가 제네시스 게임을 작업하며 당시 PC 모니터보다 색상 표현이 좋지 않았던 텔레비전으로 출력하려고 화려한 색상을 써야 했던 경험에서 일부 설명할 수 있다. 낮은 해상도에 색상 번짐이 있는 TV를 사용하는 콘솔 게임들은 제대로 보이려면 대비 높은 아트윅이 필요했다.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밝은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한 앨런의 지령이었다. 그는 주기적으로 조용히 사무실에 나타나 불을 켜고 창문의 블라인드를 열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밝은 방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므로 우리 아티스트들도 그런 환경에서 잘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모니터에서 주의를 돌릴 외부 조명이 없는 어두운 방에서 보았을 때 잘 읽히는 그림은 그리기 쉽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컴퓨터 아트가 밝은 빛과 경쟁할 때는 보기가 훨씬 더 어렵다. 게다가 형광 전구의 차갑게 점멸하는 빛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색상을 희석시키는 최악의 조명이다.

그래서 아트 부서의 조명은 항상 켜져 있었고 아티스트들은 최악의 조명도 감안한 아트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이런 근무 조건은 아트 팀 일부(전부?)를 신경질 나게 만들었으나 결국 당시의 다른 제품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아트윅을 탄생시켰다.

이제는 왜 《워크래프트》의 아트윅이 사탕으로 뒤덮인 듯한 모습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음에는…

지난 글에서 이번에 많은 주제를 다루겠다고 약속했지만 또 긴 글을 써버려서 미처 다 언급할 수 없었다. 이후의 글에서 계속 이야기를 진행하겠다. 하지만 내가 《데이지》에 중독되어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3부 보기


저자: 패트릭 와이엇

게임 개발자로서 22년 이상을 업계에서 일하며 여러 작은 회사들이 크게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줬고(블리자드의 부사장, 아레나넷의 창립자, 엔 매스 엔터테인먼트의 COO), 베스트 셀러 게임 시리즈의 디자인과 개발을 이끌었으며(워크래프트, 디아블로, 스타크래프트, 길드 워), 사실상 게임의 거의 모든 측면의 코드를 써봤고(네트워크, 그래픽, AI, 길 찾기, 사운드, 툴, 인스톨러, 서버, 데이터베이스, 전자상거래, 분석 도구, 암호화, 개발 운용 등), 개발한 게임의 많은 부분을 디자인했고, 플랫폼 서비스 팀을 운영했으며(데이터센터 운영, 고객 지원, 결제/계정, 보안, 분석), 대작 게임 퍼블리싱 사업에서 경쟁하는 데 필요한 첨단 기술들을 개발했다.


이 글은 저자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게시하였습니다. 저자의 블로그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영욱님이 번역을 감수해주셨습니다.
This article is translated and republished by permission of the 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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