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8일

테일 오브 테일즈, 프랭크 란츠와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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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의 말: 이 인터뷰는 게임에 대해 정반대의 철학을 지닌 테일 오브 테일즈와 프랭크 란츠의 문답을 담고 있습니다. 테일 오브 테일즈는 게임이 전통적인 목표와 규칙 구조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프랭크 란츠는 그런 방향에 그다지 가능성이 없다고 보며 전통적인 게임의 맥락 안에서 비디오게임을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테일 오브 테일즈 | 2009년 10월 | 원문보기

우리는 지난 GDC에서 프랭크 란츠의 짧은 발표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놀랐었다.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과 정반대에서 말하는 사람과 동의하는 우리를 발견했기 때문에 특히 그랬다. 우리는 비디오게임이 전통적인 게임과 달라져야 하고 새로운 예술적 미디어로 발전하려면 규칙과 목표라는 유산을 떨쳐야 한다고 항상 주장한다. 하지만 란츠는 비디오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며 되려고 해서도 안 된다고 단언한다. 대신 그는 디자이너들이 작품의 규칙과 목표에 더 집중하고 게임 놀이의 본질을 (되)찾기를 주문한다. 우리는 이것이 많은 비디오게임에서 최선의 선택임에 동의한다. 그 게임들은 서사와 몰입 측면에서 그다지 흥미롭지 않으나 무언가 다른 것을 강점으로 한다.

프랭크 란츠가 게임으로서의 게임이 이어나갈 수 있는 커다란 가능성에 대해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다

테일 오브 테일즈(ToT): 당신이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라고 말한 게 잘 알려졌죠. 무슨 말인지 조금 설명해줄 수 있나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의 비디오게임이 어떻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프랭크 란츠(FL): 저는 미디어라는 단어를 게임에 쓸 때 담긴 함축에 의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다”는 구호를 다음의 네 가지 주장으로 나누어본다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네요.

1. 게임은 맥루한스러운 전자문화 형식과 달리 완전히 진기하고 신비한 것이 아닙니다. ‘미디어로서의 게임’이란 관념은 비디오 게임과 그보다 앞선 놀이의 유구한 역사 사이의 개념적 간극을 강화합니다. 그 관념은 컴퓨터에 무언가를 넣는 게 나쁜 작품에 대한 변명인 듯 “게임은 아직 유아기에 있다”고 말하게 합니다. 더 나은 게임을 만들고자 한다면 비디오 게임을 전통적인 게임과 놀이(이것도 여전히 신비가 많죠!)의 긴 역사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유산으로, 게임이 주변에 만연하다는 증거로 주장해야 합니다. 컴퓨터가 게임에 뿌리를 둔 겁니다. 게임은 컴퓨터 이전부터 존재했고 게임은 컴퓨터가 사라진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겁니다.

2. 이것이 두 번째 함축으로 이어지는데요. 비디오 게임은 컴퓨터에서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미디어라는 생각입니다. DVD가 DVD 플레이어에 들어맞거나 TV 쇼가 텔레비전 안에 들어맞는 것처럼 게임은 컴퓨터나 콘솔에 들어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관점이 현재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너무 강하게 반영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보기에 컴퓨터는 새롭고 크고 멋지고 흥미로운 물건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 흥미는 사라지게 될 겁니다. 왜냐면 컴퓨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작동, 즉, 연산과 연결성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결국 우리는 게임을 컴퓨터에 넣는 것으로 생각하길 멈추고 컴퓨터를 게임 안에 넣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겁니다.

팩맨해튼

3. ‘미디어로서의 게임’의 다음 함축은 게임이 소비하는 콘텐츠 덩어리라는 생각입니다. 네, 많은 게임이 그렇습니다. 많은 비디오 게임이 소비하는 콘텐츠 덩어리입니다만, 모두 그렇지는 않습니다. 많은 게임이 우리의 일상에 엮인 습관, 배우는 언어, 가입하는 클럽, 능숙해지는 연습에 가깝습니다. 다섯 시간이나 50시간만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니라 평생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게임이 이런 형태에 더욱 가깝습니다.

4. 마지막으로, 미디어로서의 게임은 게임이 의미를 지니는 방법에 대해 특정한 사고방식을 강하게 함축합니다. 저는 이걸 ‘의미의 메시지 모델’이라고 부르는데요. 즉, 화자가 여기에 있고 청자가 저기에 있어서 게임은 전자가 후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로라는 사고입니다. 저는 게임이 그보다 복잡하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은 의미 네트워크, 작은 비선형 의미 생성 기계 같은 겁니다. 메시지와 미디어에 대한 오래된 관념에 의존하지 않고 의미를 지니는 방법, 더 풍부하고 더 의미 있게 만드는 방법을 밝혀내는 건 어려운 작업입니다.[1]

ToT: 비디오게임과 다른 게임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보나요? 그렇다면 어떤 차이인가요? 그 차이가 늘어나는 게 좋다고 보나요? 아니면 비디오게임이 다른 게임에 더 가까워져야 할까요?

FL: 네, 차이가 있지요. 그리고 때로는 생각을 멈추고 이 차이가 내 생각보다 클 수 있음을 스스로 상기합니다. 비디오 게임이 포커와 골프에 역사적 변덕으로만 관계되어 있을 뿐인 완전히 새로운 문화 형태인 것도 가능합니다. 어쩌면 비디오 게임의 진정 흥미롭고 아름다우며 의미 있는 측면은 몰입되는 실시간 3D 환경과 상호작용 서사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제가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ToT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 믿을 의사가 있습니다. 어쩌면 3D 비디오 게임이 게임의 경쟁과 도전, 승패 없이 몰입되고 상호작용하는 실시간 이야기 공간으로 진화할 수도 있죠. 가능합니다. 하지만 제겐 그런 증거가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유형에서 그 시초가 되는 모범들이 많이 보이진 않습니다. 이 방향에 발전의 조짐이 그렇게 많다고 보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게 가장 흥미롭고 성공적인 비디오 게임은 게임의 전통적이고 근본적인 특성을 공유하는 게임입니다. 몰입되는 환경과 실시간 3D는 장관이고 혁명적인 새 재료지만, 그것이 다른 재료를 대체하리라 보지는 않습니다. 나머지 다른 것들 역시 제법 장관이니까요. 비선형적이고 동적인 시스템의 아름다움과 양식화된 사회적 상호작용, 폭력 충동의 분절된 복잡성으로의 변환, 가능 공간의 협력 탐험, 논리와 구조 옆에서 춤추는 광기와 무작위성 같은 게 제가 비디오 게임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이고 또한 게임 일반의 핵심에 있는 것들입니다.

예술과 미학

ToT: 비디오게임이 더 예술적이어야 한다는 욕구들이 있지요. 테일 오브 테일즈에서 그 욕구는 우리를 규칙과 목표의 형식적 구조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가장 대표적으로 로드 험블과 제이슨 로러, 조나단 블로우)은 예술적 표현이 규칙과 도전의 언어를 통해 발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게임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래야 할까요?

FL: 게임이 미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건 제게도 분명합니다. 게임은 다른 목적이 아닌 그 자체의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데다, 복잡하고 흥미로우며 만족스러운 정서적/지적 경험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어떤 게임에 매료되고 감동하고 감탄하며 의미를 찾으며, 어떤 게임에는 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제가 《GTA》보다 《크랙다운》을, 체스보다 포커를, 《캐슬바니아》보다 《동굴이야기》를 선호하게 하는 요인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건 견해와 스타일, 정치, 취향의 문제고, 논쟁하고 토의하고 고려할 것이지만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습니다. 이 모든 성질이 미학의 특성이지요. “예술”은 지독하게 혼란스러운 단어입니다. 대화에 연막탄을 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 대신 우리가 게임에서 흥미롭고 만족스럽게 느끼는 구체적인 것을 뭐든 말해봅시다. 우리는 발전을 갈구하며 깊고 풍부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만들고 플레이하는 데 주의와 열정을 쏟을 가치가 있는 게임을 만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를 감동하게 하고 우리에게 절묘한 슬픔과 압도적인 즐거움을 주며 생각하고 이야기하기 매력적인 것을 주는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까무러치게 하고 우리의 표준적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도전하고 마음을 날려버릴 뿐 아니라,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위안하고 매혹하고 시간을 잡아먹는 게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새롭고 놀라우며 오래되고 친숙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게임들을 만듭시다. 그게 예술이냐고요? 누가 신경 씁니까?

ToT: 하지만 게임으로 예술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측면은 미학이 아니에요. 이들이 신경 쓰는 것은 관념의 표현, 저희 같은 경우에는 관념을 탐색하는 도구를 만드는 겁니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경험할 뿐 아니라 소통하는 것, 그걸 통해서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이걸 위해 게임을 활용하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하나요?

FL: 제가 미학이라고 말한 것은 관념 표현과 당신이 말한 관념 탐구의 다양한 치환을 모두 포함하는 뜻입니다. 재미있군요. 혼동을 부르는 “예술”이란 단어의 사용을 피하려고 “미학적 형식”을 말했는데, 당연히 “미학”도 그만큼 혼란스러울 수 있네요. 많은 사람이 시각이나 미의 관념을 암시하며 “미학”이란 말을 쓰니까요. 물론 저는 게임이 관념을 탐구하고 표현하고 대상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과 놀이

체인 팩터의 광고

ToT: 우리는 비디오게임이 아날로그 게임보다 훨씬 더 엄격함을 자주 느낍니다. (특히 아이들의 게임이나 그 외의 육체적이고 사교적인 게임들이 비해서요.) 비디오게임이 그만큼 놀이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기묘한 모순이지요. 이런 변화가 흥미롭다고 생각하나요?

FL: 네, 저는 게임들이 제약과 자유, 결정론과 무작위성, 복종과 즉흥 같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진정 흥미로운 건 이런 요인들이 함께 춤추면서 어느 것도 어느 것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경주가 아닙니다. 잘 아시겠지만(폭소).

ToT: 스티븐 풀은 오늘날의 비디오게임이 놀이보다는 일에 닮아있다고 평했습니다.[2] 동의하시나요? 그게 문제일까요?

FL: 게임과 일의 관계는 굉장히 복잡합니다. 아마 동의하지 않는다 말해야 할 것 같네요. [RPG의] 보석 제작이 일과 닮았나요? 물론 닮았습니다. 통나무 던지기[3]도 그렇죠! 앨리스가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모호한 방식으로 일과 닮았다고 해보죠.

ToT: 대부분 비디오게임은 싱글 플레이어 게임입니다. 컴퓨터에서 하지 않는 게임 대부분은 멀티플레이어 게임이고요. 어째서일까요?

FL: 흠. 전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거 굉장히 좋은 질문이네요. 어쩌면 아날로그 게임이 깊고, 흥미롭고, 놀랍고,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는 데 다른 인간의 마음과 의지의 존재가 불가결한 재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다른 인간이 없어도 그런 종류의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지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개입이 필요하면 오히려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게 한 가지 요인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ToT: 대부분 멀티플레이어 게임인 비[非]컴퓨터 게임은 승리하거나 패배할 수 있는데요. 그리고 패자는 승자와 마찬가지로 게임을 완료합니다. 단지 결과가 다를 뿐이죠. 그런데 많은 비디오게임, 특히 싱글 플레이어 게임은 승리해야만 즐길 수 있습니다. 패배는 흔히 게임을 완료하는 데 실패한 것에 지나지 않고 다시 시작해야만 하죠. 승리할 때까지요. 패배할 수 없는 게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레고 정크봇

FL: 성공과 실패 사이의 긴장감이 모든 게임의 핵심 재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아니면서도 다른 표현, 의미 있는 상호작용 시스템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테일 오브 테일즈가 만드는 종류의 작품들, 상호작용 서사 환경들을 더 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게임이든 반[反]게임이든 간에 탐구할 가치가 있는 방향입니다.

ToT: 우리 작품들이나 다른 “비[非]게임” 혹은 “반게임” 개념을 가리킨 건 아니었어요. 사실상 모든 주류 게임을 가리켜 물은 겁니다. 특히 액션 어드벤처 종류를요. 그런 선형적인 게임들은 선을 계속 나아가지 못하는 게 유일한 패배 조건인 경향이 있죠.

한 사람 혹은 팀이 승리하고 다른 쪽은 패하면서 게임이 끝나는 더 전통적인 게임들(축구, 체스, 보드게임 등)과 반대입니다. 많은 비디오게임이 게임의 결론으로 패배가 나오는 걸 허용하지 않습니다. 이겨야만 하죠. 게임을 이기지 않았다면 진짜로 게임을 플레이한 게 아니게 됩니다.

FL: 저는 이것이 비디오 게임과 더 전통적인 게임의 차이가 아니라 멀티플레이어 게임과 싱글 플레이어 게임의 차이에서 왔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싱글 플레이어 액션 어드벤처 게임도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런 게임의 경험은 전통적인 게임과 닮아있는 분리된 조우의 연속으로 구성되었지요. 이러한 분리된 조우 각각에는 승리 혹은 패배(혹은 마지막에 남은 체력/탄약/기타 자원의 양에 따라 큰 승리와 작은 승리)라는 수량화 가능한 결과가 있습니다. 일본 RPG도 이런 식에 아주 가깝죠. 제가 결국은 게임의 끝에 도달하게 될 것임을 미리 안다고 해도 각각의 전투가 게임이 되는 데 필요한 양의 불확실성을 담보합니다.

ToT: 지금까지 당신이 작업한 게임 프로젝트 중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조금 말해줄 수 있나요?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 어떤 프로젝트를 작업하나요?

드롭7

FL: 저는 지나칠 정도로 제가 만든 거의 모든 게임에 긍지를 느낍니다만, 어느 것이든 “훌륭하다”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팩맨해튼》(PacManhattan)이 제가 관여한 게임 중에서 아마 가장 유명할 텐데 손에 꼽을 정도의 사람만 플레이해봤습니다. 《빅 어반 게임》(Big Urban Game)은 제법 훌륭했다고 생각해요. 작고 추상적인 게임인 《드롭7》(Drop7)과 거대한 상호작용 서사 《체인 팩터》(Chain Factor)도 아주 자랑스럽습니다. 사람들이 《파킹 워즈》(Parking Wars)에 쏟은 시간과 애정의 양도 자랑스럽고 약간 충격이었습니다. 게임랩에서 만들었던 《정크봇 레고》(Junkbot Lego) 게임들과 《게임 디자인 원론》(Rules of Play)을 위해 디자인한 보드게임 《아이언클래드》(Ironclad)도 아직 특히 애착이 갑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아직 말할 수 없습니다.

ToT: 정크봇에 참여했었는지는 몰랐네요. 우리 애들이 좋아해요!

매력적인 생각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 생각이 여기저기 전염되길 바랍니다. 우리가 거의 설득될 뻔했어요! ;)


함께 보기:

― 테일 오브 테일즈의 철학을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실시간 예술 선언"

― 테일 오브 테일즈가 진행한 다른 인터뷰들: 아메리칸 맥기, 셀리아 피어스, 제노바 첸, 마이커 라우아르트


소개:

프랭크 란츠: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징가 뉴욕(前 에어리어/코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뉴욕대학교 게임 센터의 디렉터이다. 20여년간 게임계에서 일하며 게임랩의 게임 디자인 디렉터, 팝 앤 코의 리드 게임 디자이너, R/GA 인터랙티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했었다. 디지털 세상을 무대로 하는 게임만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대규모로 진행되는 ‘빅 게임’을 개발하기도 했다.

테일 오브 테일즈: 미셸 사민과 오리아 하비로 이루어진 벨기에의 게임 및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제작팀. 함께 전자 예술과 웹 예술을 제작하다 2002년부터 비디오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개발이 중단된 게임 《8》을 시작으로 《패스》와 《엔들리스 포레스트》, 《그레이브야드》, 《파탈》 등 이른바 “아트게임”으로 지칭되는 작품들을 만들어왔다.


이 인터뷰는 테일 오브 테일즈의 허락 하에 번역하고 게시하였습니다.

주석

  1. 역주: 2009년, 란츠는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 게임은 미디어가 아니라는 논지를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했다. 이 글 또한 언젠가 번역소에서 번역할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2. 역주: 비디오게임의 미학을 탐구한 책 《Trigger Happy》를 쓴 영국의 작가 스티븐 풀은 2008년 F.R.O.G 컨퍼런스에서 비디오게임의 일과 닮은 성질을 이야기했다. 풀은 비디오게임의 플레이어가 게임이 시키는대로 하고 보상을 받는 구조가 현실 세계에서 보이는 고용 관계의 업무 구조와 닮아있다며, 플레이어가 진정 자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비디오게임을 제안했다. 자세한 내용은 그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본문으로]
  3. 역주: 긴 통나무를 던지는 스코틀랜드의 전통 놀이. 영문 위키피디아 항목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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