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일

말 없는 게임 디자인 1부: 상호작용과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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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밝은해입니다. 오늘은 드디어 연초부터 한다고 말만 많았던 번역을 여러분께 선보입니다!

"말이 아닌 디자인만이 게임을 말해준다"(I Have No Words & I Must Design)라는 글을 기억하시나요? "코스티캔의 게임론"이란 이름이 더 익숙한 분도 있겠네요. 이 글은 미국의 게임 디자이너 그렉 코스티키안이 게임이란 무엇이고 게임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분석한 에세이로, 원래 1994년 영국의 Interactive Fantasy라는 롤플레잉 게임 잡지에 수록되었던 것입니다.

해외 게임계에서는 게임 디자인의 틀을 잡으려 한 개념적 접근으로 유명한 글이죠. 1999년 이민석님과 홍순명님이 번역해주신 덕에 국내에서도 적지 않게 읽히고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이번 번역에서도 많은 참고를 했습니다.)

이후 2002년에 코스티키안은 원래 글에서 다루었던 개념을 다듬고 발전시켜서 똑같은 제목으로 새로운 글을 내놓았습니다. 이 글이 바로 오늘 여러분께 선보이는 "말 없는 게임 디자인"1입니다.

2002년판이 꼭 1994년판보다 더 나아서 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혹자는 "역사적 중요성"이나 디테일한 요소때문에 원판을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글을 소개하는 것은 이것이 이 나름대로의 가치도 크거니와, 해외의 게임 디자인에서 중요한 논의와 지식을 모두 한글로 접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이 사이트의 포부 때문입니다.

1994년판을 읽으셨던 분도, 읽지 못 하셨던 분도 즐거운 자극으로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디자인과 플레이의 번역이 언제나 그랬듯 이 글 역시 원 저자인 그렉 코스티키안의 허락하에 번역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번역은 lovol님, 칼리토님, 하이얼레인님이 감수하고 검토해주셨습니다. 모두 여러 측면에서 날카롭게 찔러주셨고 스스로도 느낀 바가 많았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은 원본이 26페이지 정도로 분량이 많아 블로그에는 총 세 부로 나누어 소개하겠습니다. 세 부를 모두 소개한 후에는 출력이나 휴대기기에서의 독서에 용이하도록 PDF판과 ePub판을 배포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블로그에 소개하는 동안 오타나 오역, 잘못된 정보나 표현이 있을 경우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수자 세 분께서 잘 살펴봐주셨지만 결국 최종적인 모습은 미숙한 제 손 끝에서 나오니까요 :)

오늘은 1부로 서두 부분과 게임의 구성요소에서 '상호작용'과 '목표'를 소개하는 부분을 실었습니다. 즐기시길!


말 없는 게임 디자인

내가 처음 ‘게임플레이’(gameplay)란 용어를 들은 건 1982년 아타리(Atari)에 입사하려고 면접을 봤을 때다. 누군가 신작 아케이드 게임 《잭슨》(Zaxxon)을 막 플레이했던 사람이 썼던 것 같다. “그거 게임플레이가 좋죠.”

그 이래로 게임플레이란 말은 이 분야 어디서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게임플레이를 마치 게임이 지녀야 하는 마법이나 신비인 마냥 말한다. 게임 디자이너들은 자신을 코더나 관리직, 아티스트들과는 달리 ‘게임플레이를 이해한 사람’으로 장식하길 좋아한다. 실제로 그런 사람은 극소수다. ‘게임플레이’라는 용어 자체가 명료하지 못해 전혀 쓸모가 없는 용어기 때문이다. “그거 게임플레이가 좋다.”라고 하는 건 “그거 좋은 책이다.”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좋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뭐가 좋은지, 어떤 기쁨을 주는지, 다른 것은 어떻게 좋게 만들 수 있을지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게임은 플라스틱이다

‘게임’은 가소성이 높은 매체다. 신석기부터 첨단의 기술까지 어떤 기술에든 적응할 수 있다. 그리고 세월에 따라 엄청난 종류의 게임이 개발됐다…. 보드게임, 전쟁게임, 테이블톱 롤플레잉 게임, 컴퓨터 및 콘솔 롤플레잉 게임,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게임, 라이브 액션 롤플레잉 게임, MUD, MUSH, MOO, 카드 게임, 트레이딩 카드 게임, 플레이 바이 메일 게임, 플레이 바이 이메일 게임, 미니어처, 시뮬레이션, 비행 시뮬레이션, 차량 시뮬레이션, 텍스트 어드벤처, 그래픽 어드벤처, 액션 어드벤처, 슈팅, 잠입, 댄스, 드라이빙, 실시간 전략, 턴제 전략, 갓게임, 플랫포머, 판타지 스포츠, 횡스크롤, 미궁 게임, 상식 게임, 퍼즐 게임, 무선 게임, 위치 기반 엔터테인먼트, 도박, 페인트 볼, 스포츠, 경마….

모두 게임이다. 어떻게 이렇게 같은 것이 없는 분야가 있을 수 있을까? 이 모든 게임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살펴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기는 한 걸까?

우리가 게임을 이해하고, 게임을 이성적으로 말하며, 게임을 더 잘 디자인하려면, 게임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게임플레이’라는 것을 구별할 수 있는 덩어리로 나누어야 한다. 짧게 말하면, 게임을 위한 비평적 어휘가 필요하다.

상호작용 (interaction)

1982년, 크리스 크로포드(Chris Crawford)2는 몇 안 되는 뛰어난 게임 디자인 서적 중 하나인 《The Art of Computer Game Design》3을 출간했다. 책에서 크로포드는 그가 ‘게임’이라고 부르는 것을 ‘퍼즐’과 대비했다. 그는 퍼즐은 정적이고, ‘플레이어’에게 단서의 도움을 받아 풀 수 있는 논리적 구조를 제시한다고 했다. 반면 ‘게임’은 정적이지 않아 플레이어의 행동에 따라 변화한다고 했다.

어떤 퍼즐은 분명히 그렇다. 누구도 크로스워드를 ‘게임’이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크로포드가 보기에 어떤 ‘게임’은 실로 퍼즐 그 자체다. 《조크》(Zork)4가 그 예다. 이 게임의 유일한 목표는 퍼즐을 푸는 것이다. 목적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특정한 방법으로 사용하면 게임상태에 바랐던 변화가 일어난다. 그 과정에는 저항도, 역할수행도, 관리할 자원도 없다. 승리는 오로지 퍼즐 풀기의 귀결일 뿐이다.

내 생각에 크로포드는 사례를 과장했다. 《조크》가 속하는 범주인 어드벤처 게임은 단순한 퍼즐 그 이상이다. 어드벤처 게임은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하여 상태가 변한다. 새로운 지역으로 가서 퍼즐을 풀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 이후의 어드벤처 게임들은 (《조크》는 컴퓨터 게임 초기의 성공작이다) 캐릭터의 상호작용과 이야기의 전개가 더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조크》에 “부끄럽게도 게임 아님”이란 딱지를 붙인다는 게 내키지 않는다. 그저 퍼즐 요소가 센 게임이다.

거의 모든 게임에 어느 정도 퍼즐 해결이 들어 있다. 순수한 군사 전략 게임에서조차 플레이어에게 특정 시점에 가진 부대로 최적의 공격을 만드는 퍼즐을 풀도록 한다. 사실, 게임에 어떤 종류든 의사결정이나 다른 자원 사이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5가 있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퍼즐 요소’로 간주하고 최적의 해법을 이끌어 내려 한다. 일인칭 슈팅 게임의 데스매치 플레이에서도 플레이어는 엄폐물과 지형을 이점으로 이용하려 하고, 상대의 현재 위치와 주변 환경의 성질이 제시된 ‘퍼즐을 푼다.’ 퍼즐을 게임에서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크로포드의 구별은 유용한 데가 있다. 퍼즐은 정적이고 게임은 상호작용한다는 점 말이다.

어떤 독자는 ‘상호작용’은 컴퓨터 매체를 칭하는 용어가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많은 게임이 디지털이 아니지 않은가? 《모노폴리》(Monopoly)6는 상호작용하는 것일까?

물론 상호작용한다. 플레이어는 자신이 밟은 땅의 소유권을 사들일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게임 상태는 그 결정에 반응해서 변한다. 게임의 결과는 플레이어의 결정에 따라 달라진다. 게임은 플레이어와 상호작용하며(그리고 플레이어끼리도 상호작용한다), 플레이에 따라 상태가 변한다. 《모노폴리》는 그 핵심이 상호작용한다.

어느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게임이 아니라 퍼즐이다. 언젠가 나는 ‘인터랙티브 게임’ 강좌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다. 이전에도 어떤 사람이 전자게임(아케이드, 콘솔, 컴퓨터)을 말한다며 그런 용어를 쓰는 걸 들은 적이 있다. 그건 잘못된 표현이다. 모든 게임은 상호작용한다. ‘인터랙티브 게임’은 중언부언이다.

목표 (goals)

그런데 ‘상호작용’이란 대체 무슨 의미일까?

사실 별것 아니다. 전등 스위치도 상호작용 한다. 딸각 올리면, 전등이 켜진다. 딸각 내리면, 전등이 꺼진다. 상호작용이다.

분명히 전등 스위치는 게임이 아니다. 상호작용 그 자체에는 게임의 가치가 없다. 상호작용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상호작용하는 어떤 것이 있다고 해보자. 어느 지점에서 당신은 선택에 직면한다. A 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고, B 하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상황은 당신의 결정에 따라 변한다.

그런데 A가 B보다 나은 이유는 뭘까? 아니면 어떤 때는 B가 A보다 낫고, 또 다른 때는 아닐까? 어떤 요인이 결정에 이르게 할까? 어떤 자원을 관리해야 할까? 최후의 목표는 뭘까?

그렇다! 지금부터는 ‘상호작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제는 의사결정, 즉 목적이 있는 상호작용에 대해 말해볼 것이다.

게임에는 결정을 내려야 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 체스를 생각해 보자. 체스는 흥미를 끄는 매력은 거의 없다. 시뮬레이션 요소도 역할수행도 없고 색상도 단순하다. 있는 거라고는 의사를 결정해야 할 필요다. 규칙은 플레이어를 단단히 구속하고, 목표는 명확하며, 승리에는 몇 수를 앞선 생각이 요구된다. 의사 결정의 탁월함이 체스에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아마 의사 결정 자체가 강한 개념일 수 있다. 그 핵심을 의사 결정에 의존하는 게임으로 체스와 함께 《문명 III》(Civilization III)와 《던전 앤 드래곤》(Dungeons & Dragons)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지만 《퀘이크》(Quake)나 슈퍼 마리오 게임처럼 움직임이 빠른 게임에선 세심한 계획보다는 재빠른 반응과 인터페이스의 숙달에 승리가 달렸다. 어디로 갈 것인지, 어디로 어떻게 상대를 피할 것인지와 같이 내려야 할 결정이 분명히 있지만, 그 상호작용의 기본 양식은 덜 지능적이고, 소근육 협응력과 특정한 기술의 훈련에 의존한다. 하지만, 그런 기술과 동작의 게임(skill-and-action game)에서조차도 상호작용에 목적이 있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무엇을 할까? 얼마간은 매체에 달렸다. 어떤 게임에선 주사위를 굴리고, 어떤 게임에선 친구와 잡담을 하며, 어떤 게임에선 키보드를 두드리고, 어떤 게임에선 컨트롤러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어떤 게임에서든 플레이어는 자신의 목표를 이루도록 계산된 방식으로 반응한다.

게임을 하는 내내 플레이어는 게임의 상태를 고려한다. 게임 상태는 화면 위에 보이는 것일 수도 있고, 게임마스터가 방금 한 말일 수도 있고, 판 위에 놓인 말들의 배열일 수도 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목표, 쓸 수 있는 게임 토큰과 자원, 투쟁해야 하는 대상을 고려한다. 플레이어는 최선의 행동 방침을 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목표를 달성하고자 최선으로 반응한다. 모든 게임에 목표가 있을까? 대부분은 아주 분명하게 존재한다. 대부분 게임에는 명백한 승리 상태, (보드 전쟁게임의 용어를 빌리면) 승리 조건(victory condition)이 있다. 우리는 게임을 하며 승리를 달성하는 게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고, 게임 속에서 목표가 우리의 행동을 이끌게 하는 데 동의하는 기본적인 계약(transaction)을 한다. 그 기본적인 약속 없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런데 어떤 게임은 명확한 목표가 없다.

몇 년 전, 윌 라이트(Will Wright)는 게임 개발자 회의(Game Developers Conference) 강연에서 그가 디자인한 《심시티》(SimCity)를 소프트웨어 장난감이라고 설명했다. 이해를 돕고자 그는 공에 비유했다. 공은 탐구해볼 만큼 흥미로운 반응을 일으킨다. 당신은 공을 튀기고, 돌리고, 던지고, 드리블할 수 있다. 원한다면 축구나 농구 같은 게임에서 사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이 공 안에 내재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정한 목표가 장난감에 덧씌워진 것이다.

《심시티》도 그렇다. 다른 많은 컴퓨터 게임들처럼 《심시티》에는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세계가 있다. 하지만, 다른 게임과 달리 명확한 목표가 없다. 아, 물론 스스로 고를 수는 있다. 슬럼가 없는 도시를 건설한다든가, 운송산업에 크게 의존하는 도시를 만든다든가 목표를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심시티》 자체는 승리 조건도, 목표도 없다. 말 그대로 소프트웨어 장난감이다.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선 결함일 수 있다. 라이트가 디자인한 다른 게임이 대비되는 예를 보여준다. 바로 《심어스》(SimEarth)다. 《심어스》는 지구 상 생명의 진화를 모델로 한 것이다. 게임은 소수의 단세포 생물로 시작하고 생물은 태초의 바다에서 증식한다. 시간이 지나면 생물은 더 복잡한 동물로 진화해서 육지에 발을 내딛고, 종을 확산해서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며, 이따금 발생하는 재앙에 대처한다. 지적 생명체가 진화하면 게임은 끝난다.

1990년에 발행된 《심어스》는 시장에서 실패했다. 《심시티》는 오랫동안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되며 나올 때마다 많이 팔린다. 그런데 《심어스》는 사라졌다. 왜일까?

두 게임 모두 플레이어에게 조작할 매개변수와 할 일 몇 가지를 제공한다. 두 게임 모두 의자에 등을 받치고 긴 시간 동안 모델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걸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 대부분 다른 게임과 달리 두 게임 모두 플레이어가 적극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두 게임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심시티》는 목표의 선택권이 넓은데, 《심어스》는 어떤 목표도 선택할 수 없다. 《심어스》에는 정말 목표가 없다. 플레이어가 고의적으로 방해할 계획을 세우지 않는 한, 지적 생명은 진화하고 게임은 끝난다.

《심어스》를 ‘플레이’하는 건 전등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 같다. 어떤 의미도 없다. 대조적으로 《심시티》에서는 어떤 도시를 원하는지 플레이어 스스로 결정하고 그 도시를 안정적으로 만들고자 투쟁할 수 있다. 통근자들이 차량을 이용해 출퇴근하며 큰 중심가는 없는 교외의 낙원을 만들고자 할 수 있다. 공업 시설은 없지만 괜찮은 대량수송 기관을 갖춘 중앙집중형 도시를 만들고자 할 수도 있다. 수백만 가지 것을 시도할 수 있다. 《심시티》에서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플레이해도 흥미롭다.

윌이 맞았다. 어떻게 보면 《심시티》는 전혀 게임이 아니다. 그저 소프트웨어 장난감이다. 하지만, 공과 마찬가지로, 좋은 장난감이다. 그 안에 고유의 ‘승리 상태’도 내장된 명백한 목표도 없지만, 수많은 목표 지향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좋은 게임이다. 《심시티》는 플레이어가 스스로 목표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가능한 다양한 목표를 뒷받침해준다.

《심시티》는 적어도 사용자가 게임으로 플레이할 때는 게임이다. 그런데 《심어스》는 《심시티》와 유사함에도 그렇지 않다.

명확한 목표가 부족한 게임은 《심시티》 뿐만이 아니다. 모든 페이퍼 롤플레잉 게임(papaer rolplaying game)과 《울티마 온라인》(Ultima Online)과 《에버퀘스트》(EverQuest) 같은 그래픽 MUD를 포함한 온라인 MUD7도 마찬가지다.

롤플레잉 게임과 MUD 모두 플레이어는 상상의 세계에서 한 명의 캐릭터를 제어한다. 종종 다른 플레이어와 만나 무리로 세계 속에서 함께 행동하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아닌 캐릭터(non-player character, NPC)는 페이퍼 RPG의 경우 게임마스터가, MUD의 경우 자동화된 시스템이 제어한다.

두 유형의 게임 모두 캐릭터 성장이 핵심 개념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더 강해지고, HP와 스킬, 주문, 장비 등을 늘려간다. 많은 게임에서 무언가를 죽임으로써 힘을 얻는다. 가령 《던전 앤 드래곤》이나 《에버퀘스트》 모두 그렇다. 어떤 게임에서는 퀘스트를 완수하거나 이야기 목표에 도달함으로써 힘을 얻는다. 또 전투든 다른 용도든 스킬을 사용해서 힘을 얻기도 한다. 캐릭터를 성장하게 하는 메커니즘이 어떻든 간에, 캐릭터의 성장은 RPG와 MUD 모두에 있어 근간이다.

이 점이 이미 목표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려는 동기를 부여받는다.

MUD와 RPG는 여럿이 함께하는 사회적인 게임(social game)이다. 두 게임 양식 모두에서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PC)를 만나 상호작용한다. 그러면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정립하고, 세계 그 자체를 알아가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다른 목표도 달성하게 된다. 가령 친구 중 한 명이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어한다고 하자. 친구를 도와주면 그 와중에 스스로 더 강해질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다른 캐릭터와 만드는 접점과 그 세계의 본질 자체(그것이 잘 디자인되었거나, 게임 마스터가 잘 운영할 때)가 캐릭터의 성장과는 또 다른 목표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게임에선 플레이어가 방향을 잃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다음에 뭘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다음 단계의 힘에 도달하는지 확신하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다음 단계에 도달할 동기가 충분하지 않기도 하다.

나도 롤플레잉을 하며 지루함을 느꼈던 때가 있다. 내 캐릭터가 다른 PC들과 여관에 둘러앉아 뭘 할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가 있었다. MUD에서는 나가서 놀(gnoll)이나 죽이는 데 지루해져서 뭐 더 할 거 없나 하던 때가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그런 순간은 MUD나 RPG의 목표가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캐릭터 성장이란 목표가 함축되어 있긴 하지만 때로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내가 뭔가 흥미로운 일을 찾아보려 한 것은 목표를 찾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게임이 날 시들게 했었다. 아까 그 RPG의 경우에는 당시 내 게임마스터가 실력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은 게임마스터는 플레이어들이 지루해하는 것을 알아채고 뭔가 할 일을 준다. 마땅치 않으면 한 무리의 오크가 여관에 나타나게 해 머리를 깨부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면 플레이어는 즉각적인 목표를 가지게 된다. 자기보존은 좋은 목표다. MUD의 경우에는 그 디자인이 목표의 다양성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몬스터를 베고 보물을 취하는 것만으론 시간이 흐르면 김이 빠진다. 잘 운영되는 MUD는 캐릭터 성장에 다른 메커니즘도 제공한다.

궁극적으로 RPG나 MUD의 플레이어는 스스로 목표를 선택한다. 그런 게임은 명확한 목표를 제공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목표를 허용해 플레이어가 그 중 끌리는 것을 찾아 고를 수 있게 한다.

그렇다고 목표의 존재가 부정되는 건 아니다. MUD나 RPG가 명확한 승리조건을 가지는 게임 양식인한 목표는 그 근간이다. 실제로 플레이어는 자신이 추구할 만한 목표가 없다고 느끼기 시작하면 초조해하기 시작한다.

게임은 목표 지향적인 상호작용이다. 하지만, 목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계속

- 2부: 투쟁과 구조, 내생되는 의미

- 3부: 르블랑의 분류와 결론


주석

1원본은 1994년판과 2002년판의 제목이 똑같은데 왜 번역제목은 다르냐고 물으신다면, 이 제목이 주제에 더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원본의 제목 "I Have No Words & I Must Design"이 패러디한 과학 소설 《I Have No Mouth, and I Must Scream》의 제목은 "비명을 질러 뭔가 알려야 하는데 입이 없다"는 안타까운(혹은 공포스러운) 상황을 나타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코스티키안은 "게임 디자인을 해야 하는데 게임 디자인에 대해 논의할 말(개념)이 없다"는 안타까운 상황(...또는 공포스러운?)을 나타내는 의미로 제목을 정한 것입니다.

2역주: 1980년대 컴퓨터 게임 초기의 주요한 게임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당시에는 드물게 (컴퓨터) 게임 디자인과 관련된 이론으로 글과 책을 썼다. 현재의 게임 개발자 회의(Game Developer Conference)인 컴퓨터 게임 개발자 회의(Computer Game Developer Conference)를 창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3역주: 1982년 출간된 크로포드의 게임 디자인 이론서. 2005년 한국에 번역출간(오동일 옮김, 북스앤피플 펴냄)되었다.

4역주: 1977년에서 1979년 사이에 만들어진 초기의 텍스트 어드벤처 작품. 최초의 텍스트 어드벤처 작품인 《어드벤처》(Adventure)처럼, 묘사된 상황에서 텍스트 명령어를 입력해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5역주: 어느 두 가치가 있을 때 한쪽을 얻으면 다른 한쪽을 잃게 되는 상충관계에서 그것을 고려하고 한 쪽을 선택하는 행위.

6역주: 파커 브라더스에서 출판한 보드게임. 1924년 정치운동가 엘리자베스 매기가 만들어 출판한 《지주게임》(The Landlord's Game)을 바탕으로 나온 여러 변형 중 하나를 찰스 대로우가 복제한 것이다. 대로우가 큰돈을 벌자 파커 브라더스가 대로우의 판권과 함께 다른 변형과 매기의 판권을 사들인 것이 지금의 《모노폴리》가 되었다.

7역주: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과 테이블톱 롤플레잉 게임에 기원한 멀티플레이어 가상 세계. 텍스트만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후 그래픽을 사용한 것도 등장하지만, 1997년 리차드 게리엇이 ‘대규모 멀티플레이어 온라인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s, MMORPG)이라는 용어를 만든 이후 그래픽 MUD는 대부분 MMORPG로 불린다.

댓글 3개:

88black :

정말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많이 배우고 갑니다.

데스어웬 :

감사합니다.

어떤 MMORPG가 왜 재미있고, 왜 재미 없었는지 명확하게

이해가 가네요. 개인의 목표와 집단의 목표 설정,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시스템의 뒷받침이 관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Anonymous :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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