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이안 슈라이버
지난 시간에는 게임이 무엇인가를 질문했습니다. 오늘도 비슷한 질문을 할 겁니다. 게임 디자인은 무엇인가? 지난 시간에 간단한 게임을 만들어 봤는데요. 이번에는 일반적으로 게임이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 살펴볼 겁니다. 15분 안에 경주형 게임을 만들 수 있긴 해도, <카탄의 개척자들>이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잇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게임 디자인
강의 내내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쓸 겁니다. 그리고 불행하게 과용되는 용어기도 하죠. 그래서 여기서 그 의미를 명확히 짚고 넘어갈 겁니다. 교재 "게임 디자이너의 도전"에서 말했듯이, 게임 디자인은 게임의 규칙과 내용의 창작입니다. 프로그래밍이나 아트, 애니메이션, 마케팅처럼 게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다른 무수한 일들을 포함하는 게 아닙니다. 이 모든 일을 합하면 "게임 개발"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게임 디자인은 그 한 부분입니다.
불행하게도, 이 "디자인"이라는 말이 게임 개발의 모든 면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는 걸(특히 몇몇 대학 커리큘럼에서) 봐왔습니다. 비디오게임 산업(혹은 보드게임 산업)에서 "게임 디자인"은 특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고, 우리가 이 강의에서 쓰는 것은 그 의미입니다.
게임 디자인의 여러 유형
"게임 디자이너의 도전"에서 언급했듯이, 시스템 디자인, 레벨 디자인, 콘텐트 디자인, 유저 인터페이스 디자인, 세계 구축, 이야기 쓰기 등 게임 디자인과 관련된 일은 많습니다. 이 중 하나를 배운다 해도 10주과정 강의를 여럿 들어야 할 겁니다. 그러니 이번 여름강의에서는 게임 디자인의 전 분야를 모두 다루지는 않을 겁니다. 필요할 때 유저 인터페이스, 이야기, 콘텐트를 가볍게 건드려 볼테지만, 이 강의의 대부분은 시스템 디자인(때로 "시스템스 디자인"이나 "코어 시스템스 디자인"이라고 불리기도 함)에 집중합니다.
시스템 디자인은 게임의 기본 규칙을 정의하는 것입니다. 말은 무엇인가? 무엇을 조작하는가? (차례[턴]라는 게 있다면) 차례가 되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는가? 각각의 행동을 취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며, 게임의 상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보통, 시스템 디자인은 다음 세 가지의 창작입니다.
- 설정을 위한 규칙. 게임이 어떻게 시작하는가?
- 플레이의 진행을 위한 규칙. 게임이 시작하면, 플레이어는 무엇을 할 수 있고, 그것을 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 결말의 규칙. 게임을 끝나게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게임이 결과(승리나 패배 같은)를 가진다면, 결과는 어떻게 결정되는가?
지난 시간의 "세 가지로 15" 게임을 돌아보면, 그 아주 단순한 규칙도 이 세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규칙들의 창작이 시스템 디자인이고, 우리가 10주를 바쳐 배울 겁니다.
게임 디자이너는 뭔가?
눈치챘겠지만, 게임 디자인은 굉장히 넓은 분야입니다. 전문 디자이너들도 가끔 무슨 일을 하는지 가족이나 친구에게 설명할 때 곤란을 겪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우리가 너무 많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그동안 제가 보아온 게임 디자이너를 설명하는 비유들을 보죠.
- 게임 디자이너는 예술가다. "예술"이라는 말이 "게임"이라는 말만큼이나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지만...게임이 예술 형식일 수 있다면(적어도, 코스티키얀의 정의에서 봤듯이) 디자이너도 예술가 일겁니다.
- 게임 디자이너는 건축가이다. 건축가는 물리적 구조물을 짓는 게 아니라, 도면을 만듭니다. 비디오게임 디자이너 역시 "도면"이라고 할 수 있는 "디자인 문서"를 만듭니다. 보드게임 디자이너도 프로토타입의 형태로 "도면"을 만드는데, 이는 출판사에 의해 대량생산됩니다.
- 게임 디자이너는 파티 주최자이다. 디자이너인 우리는 플레이어를 우리 공간으로 초대해서 좋은 시간을 보내도록 최선을 다 합니다.
- 게임 디자이너는 신이다. 우리는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지배하는 물리적 규칙을 창조합니다.
- 게임 디자이너는 법률가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따라야 하는 규칙모음을 만듭니다.
- 게임 디자이너는 교육자다. 이후에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을 읽기 시작하면 보겠지만, 오락과 교육은 강한 연관이 있고, 게임이 재미가 있는 건 (최소한 이따끔은) 새로운 기술을 학습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게임 디자인이라면, 어느 대학의 커리큘럼에 맞는 걸까요? 교육이나 예술, 건축, 신학, 레크리에이션 경영, 법, 공학, 응용과학, 아니면 그 모두를 조금씩 섞은 어떤 것이라도 들어맞을 수 있습니다.
게임 디자이너는 그 모두에 해당할까요? 아니면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을까요? 논의가 더 필요하긴 하지만, 저는 게임 디자인이 다른 많은 분야의 '요소'를 가지면서, 여전히 자기 고유의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야가 얼마나 넓은 지 보일 겁니다! 게임 디자인 분야가 발전할 수록, "게임 디자인"이 전문화되어 "과학"처럼 학생들이 전공을 선택해야 할 날(그냥 "과학 전공"이 아니라 화학, 생물학, 물리학 등을 고르듯이)을 볼지도 모릅니다.
과학 말이 나왔으니...
게임은 어떻게 디자인될까요?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장 먼저 알려진 방법론은 폭포수 방식이었습니다. 먼저 게임 전체를 서류 상으로 디자인하고, 그것을 구현한 후에(비디오게임에서는 프로그래밍, 논디지털 게임에서는 보드나 말을 이용해서), 테스트해서 규칙이 적절하게 작용하는지 확인하고, 보기 좋게 그래픽을 다듬어서, 내보냅니다.
폭포수는 폭포수를 따라 흐르는 물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죠. 최종적으로 그래픽 자원을 제작하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규칙 중 하나를 바꿔야 한다면, 애석한 상황이 됩니다. 이 방법론은 다시 디자인 단계로 돌아갈 길이 없습니다.
누군가 다시 돌아가 초기 단계에서 했던 것을 고칠 수 있는 선택권을 남겨놓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반복법(iteration approach)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폭포수와 마찬가지로 먼저 디자인하고, 구현하면, 작동하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별도로 게임을 평가하는 단계를 넣습니다. 플레이해보고, 무엇이 좋으며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지 판단합니다. 그리고 나서, 다 됐는지, 아니면 다시 디자인 단계로 돌아가서 변화를 주어야 하는지 결정을 내립니다. 게임이 충분히 좋다고 판단하면, 그걸로 된 겁니다. 하지만 뭔가 바꾸어야 한다고 나타나면, 디자인 단계로 돌아가서, 밝혀진 문제를 처리하고, 변경점을 구현한 다음에, 다시 평가합니다. 게임이 준비될 때까지 이 과정을 이어갑니다.
이게 어느 정도 '과학적 방법'이라 친숙해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 관찰한다. ("내가 게임을 플레이/제작한 경험은 특정 유형의 메커닉이 재미있음을 보여주었다.")
- 가설을 세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특정한 규칙모음이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 거라 생각한다.")
- 가설을 입증 혹은 반증할 실험을 계획한다. ("이 게임의 플레이테스트를 조직해서 재밌는지 아닌지 알아보자."
- 실험을 수행한다. ("해보자!")
- 실험의 결과를 해석하면, 그것이 새로운 관찰이 된다. 첫 단계로 돌아간다.
논디지털 (카드 혹은 보드)게임에서는 이 공정이 잘 돌아갑니다. 빨리 끝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비디오게임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구현(즉, 프로그래밍과 디버깅)이 비싸고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다는 겁니다. 게임을 처음 코딩하는 데 18개월이 걸리고 시간은 2년 밖에 없다면, 게임을 플레이테스트해보고 수정할 시간이 그리 많진 않을 겁니다.
일반적으로, 더 많이 반복할 수록, 최종적인 게임은 더 좋아질 겁니다.
따라서, 어떤 게임의 디자인 공정이든 가능한 많은 반복(디자인하고, 구현하고 평가하는 전체 사이클을)이 필요하고, 그 반복을 빠르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일반적으로 더 좋은 게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 때문에, 비디오게임 디자이너들은 먼저 종이에 프로토타입을 만듭니다. 그리고 핵심규칙이 재미있다는 확신이 들어서야만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합니다. 이것을 민첩한 프로토타이핑이라고 합니다.
반복과 위험요인
게임 개발에는 많은 위험(리스크, risk)이 따릅니다. 게임이 재미가 없고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위험인디자인상의 위험이 있고, 규칙이 견고하더라도 개발 팀이 게임을 전혀 구현하지 못 하는 구현 상의 위험이 있으며, 게임이 대단하더라도 아무도 사려 하질 않는 시장의 위험 등이 있습니다.
반복의 목적은 디자인 상의 위험을 낮추는 겁니다. 반복을 더 많이 할 수록, 여러분 게임의 규칙이 효과적인지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중요한 포인트 하나를 시사합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게임이 디자인 상의 위험이 높을 수록(즉, 여러분의 규칙이 검증되지 않은 것이라면), 그만큼 많은 반복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반복 방식은 다른 성공한 게임에서 이미 검증된 메커닉을 사용하는 게임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기 게임의 후속작과 확장팩에는 폭포수 방식이 효과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게임 디자이너가 새롭고,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 영감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왜 이 강의는 디지털 게임을 만들지 않는가
여러분 중에 보드게임을 더 좋아해서 비디오게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상관 안 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비디오게임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왜 이 강의에서는 보드나 카드게임만 만들며 시간을 보내는지 궁금할 겁니다. 이제 알려줄게요. 왜냐면 반복은 마분지로 해야 더 싸고 빠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걸 기억해보세요. 보드게임을 15분 만에 만들었습니다. 게임을 코딩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립니다. 가능하면 종이로 먼저 프로토타입을 만드세요. 15분의 종이 프로토타입과 1시간 정도의 플레이테스트로 프로그래밍에 쏟을 몇 개월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강의를 좀 더 진행하다 보면, 종이를 이용한 프로토타이핑 방법에 대해 자세히 논할 겁니다. 이는 전통적인 보드게임은 물론이고, 다양한 유형의 비디오게임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논디지털 게임, 특히 보드나 카드게임에 집중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이 강의는 시스템 디자인이 중심입니다. 시스템 디자인은 게임의 규칙을 만드는 겁니다. 보드게임에서는 규칙이 있는 있는 그대로 깔려있습니다. 물론 물리적 구성요소들이 있지만, 플레이 경험은 거의 전적으로 규칙과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에 의해 결정됩니다. 규칙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게임은 재미가 없습니다. 때문에 보드게임은 규칙과 플레이어 경험 사이의 접점을 분명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됩니다.
비디오게임에서는 좀 다릅니다. 많은 비디오게임이 인상적인 기술(사실적인 물리엔진 같은)과 그래픽, 사운드를 지니고 있고 게임플레이가 진부하다는 사실을 가려줍니다. 또 비디오게임은 제작에 시간이 오래 걸리며(프로그래밍과 그래픽/오디오 자원 제작 때문에), 10주 과정에 그걸 만든다는 건 현실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테이블탑 롤플레잉 게임에서도 규칙과 플레이어 경험의 접점은 흐릿합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들이 RPG 디자인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겐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RPG는 근본적으로 협동적인 스토리텔링 활동(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경계를 설정하는 규칙 체계가 있는)입니다. 즉흥연기나 스토리텔링이 형편없는 플레이어와 함께라면 훌륭한 체계라도 망치기 쉽고, 체계가 약하다면 능숙한 플레이어에게 이용당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장르의 게임들은 멀리 할 겁니다. 적어도 초기 단계에서는요.
해보자
지난번에 만든 15분 게임을 플레이해보세요. 플레이하면서 스스로에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게임보다 더 재밌나요, 아니면 더 재미없나요? 왜 그런가요? 여러분의 게임을 더 좋게 만드려면 무엇을 바꾸어야 할까요? 게임을 완료할 때까지 플레이할 필요는 없지만, 그 플레이가 어떤지 전반적인 느낌을 잡을 때까지 플레이해보세요.
그리고 나서, 최소한 하나라도 변경하세요. 이동 규칙을 바꿀 수도 있고, 플레이어들이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보드 상의 어떤 공간을 바꿀 수도 있죠. 무엇을 어떤 이유에서 하든간에, 한 가지를 변경하고 다시 플레이해보세요. 차이점을 찾아보세요. 변화가 게임을 더 좋게 만들었나요, 나쁘게 만들었나요? 이 하나의 변화가 추가적인 변화를 생각하게 만들었나요? 게임이 더 나빠졌다면, 규칙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려 놓거나 다른 방식으로 바꿔볼 건가요?
플레이테스트 공정에 대해서는 이후에 더 자세히 살펴볼 겁니다. 지금은 그저 "내가 내 게임을 했을 때, 형편없으면 어쩌지?"하는 공포를 극복해보길 바랍니다. 지난 시간에 게임을 디자인하면서 여러분의 게임이 '형편없다'는 기묘한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혹시, 15분 만에 차세대 '기어즈 오브 워'를 바란 건 아니죠?). 이것 때문에 당신이 "나쁜 디자이너"가 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더 많은 시간을 게임에 쏟아붓고, 더 많은 반복을 한다면 더 나아지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줄 뿐이죠.
교훈
오늘 거둔 가장 큰 수확은 더 반복할 수록, 더 좋은 게임이 된다는 겁니다. 위대한 디자이너가 위대한 게임을 디자인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도 보통 '정말 나쁜' 게임을 디자인하고, 그것이 위대해질 때까지 반복합니다.
오늘의 교훈은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 가능한 개발 초기 단계에 게임의 '플레이가능한' 프로토타입이 필요하다. 더 빨리 아이디어를 플레이테스트할 수 있어야 하고, 더 자주 변경해야 한다.
- 똑같이 주어진 시간 속에서, 더 짧고 작은 게임은 길고 복잡한 게임보다 더 나은 경험을 줄 것이다. 끝내기까지 10시간이 걸리는 게임은 5분 안에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보다 반복이 더 적다. 이 강의 후반에 디자인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마음에 담아두자.
집놀이
다음 시간까지, 다음을 읽어오세요. 다음 시간에 이것들을 참고해서 게임의 형식적 요소들에 대해 말할 겁니다.
- "게임 디자이너의 도전", 2장(원자). 지난 강의에서 이야기했던 비평적 어휘와 다음 강의에서 시작할 구성요소로 나눠지는 게임의 연결점입니다.
- "Formal Abstract Design Tools" [영어] (형식적 추상 디자인 도구), 더그 처치 저. 이 글은 코스티키얀의 "말이 아닌 디자인만이 게임을 말해 준다"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가 게임을 분석하고 디자인할 도구들을 제시합니다. 비디오게임에서 많은 예를 들긴 하지만, 글이 말하는 핵심 개념이 어떻게 다른 종류의 게임에서 적용될 수 있는지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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