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0일

나는 계속 플레이했다 - 게임 중독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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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밝은해입니다.

오늘 보여드릴 글은, 게임 블로그 코타쿠[Kotaku]의 기고편집자인 마이클 파헤이가 코타쿠에 취직하기 전 MMORPG 에버퀘스트에 중독되어 삶을 거의 망칠 뻔 했던 경험을 쓴 글입니다. 이 자전적 고백을 담은 글은 약 43만의 조회수에 공감과 찬사를 담은 800여개의 댓글로 코타쿠 독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앞으로 코타쿠의 글을 간간히 번역할 생각입니다. 주로 짧게 그림 위주의 글로 업데이트되는 블로그라서 가끔 업데이트 간격을 메우는 짧은 글을 가볍게 번역할 요량으로 지켜봤는데, 외면할 수 없는 질 좋은 특집기사나 컬럼도 자주 올라옵니다. 그래서 이 코타쿠의 "고전"과도 같은 컬럼을 시작으로 한두달에 한번쯤 코타쿠에 올라온 컬럼을 번역해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코타쿠와 기즈모도를 운영하고 있는 Gawker Media란 회사가 자사의 독자적인 콘텐츠 전체를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로 공개해놓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번역에 관심 있는 분들은 코타쿠나 기즈모도 등에 좋은 글 올라오면 라이센스 따라 마음껏 번역해보시길 :)




마이클 파헤이

2009년 10월 19일, Kotaku

원제: I Kept Playing — The Costs Of My Gaming Addiction (원문보기 [영어])


"레벨 40이 뭐기에." 그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가 8년 만에 처음으로 나눈 대화였다. 그녀는 내가 에버퀘스트에서 레벨 하나 올리느라 자기를 퇴짜놓은 그날 밤을 잊지 못했다.

코타쿠에 재직하는 동안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가 에버퀘스트를 했던 시절을 언급하곤 했다. 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제대로 말한 적이 없다. 최근 내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다시 그때 일을 수면 위로 올려놨고, 나는 독자들과 함께 그 경험을 공유하기로 했다.

때는 2000년 11월, 내 삶은 괜찮았다. 사랑스러운 여자친구, 쓸모 있는 자동차, 그리고 점점 비싸지는 비디오게임에 돈을 지출하면서도 살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돈을 받는 직업까지. 그러나 그것은 넉 달 만에 모두 사라졌다.

의도는 좋았다

당시 나는 더스틴이라는 친구와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다. 더스틴은 좋은 녀석이었지만 남는 시간을 모두 컴퓨터 앞에서 에버퀘스트라는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데 쏟아 부었다. 나도 그전에 에버퀘스트의 베타에 참여한 적이 있긴 했지만, 정식서비스 이후 흥미를 잃은 상태였다. 그저 컴퓨터 게임을 하는 데 달마다 돈을 낼 수야 없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별로 할 일이 없어 더스틴이 게임 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자신의 몽크 캐릭터가 게임 속에서 뭘 하고 있는지 설명해줬다. 그가 죽은척하기 스킬을 배우고, 새 무기를 얻고, 만렙에 가까워져 가며 커다란 도전에 맞서는 모습을 지켜봤다.

여자친구인 에밀리와 시간을 보내지 않을 때는 그렇게 더스틴이 게임 하는 걸 지켜보곤 했다. 아니면 여러 가지 텍스트 기반의 MUSH와 MOO를 하며 다른 나라 사람들과 롤플레잉을 했다. 어릴 때부터 SF와 판타지, 만화책에 흥미가 있었기에 상상의 세계 속에 쉽게 빠져들었다. 어쩌면 너무 쉽게 빠졌들었는지도….

2000년이 끝날 무렵, 에밀리와 나는 헤어졌다.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기엔 그러니까…그냥 둘 다 너무 어렸고 약간 모자랐었다고 하자.

나는 우울해졌고, 더스틴이 내게 기운을 불어넣어 줄 것을 가지고 왔다.

에버퀘스트의 확장팩인 "벨리어스의 상처"가 2000년 12월에 나왔다. 더스틴은 실연에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보기가 지쳤는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에버퀘스트 패키지를 사줬다. 나는 게임을 설치하고 하프엘프 바드 캐릭터를 만들었다. 곧 아파트는 온종일 거실에서 빛나는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은 두 남자가 사는 곳이 되었다.

거의 2년 전에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던 게임이 내 삶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리는 데는 1주일도 안 걸렸다. 곧 그것은 내 인생이 되어버렸다.

잠자는 시간, 직장에 가는 시간을 빼면 에버퀘스트를 플레이했다. 잠자는 시간도 줄였다. 직장에는 갔지만 그때도 에버퀘스트의 오크 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눈을 감고 페이닥 큰 마을을 지나 픽시들을 죽이고 퀘스트 아이템을 얻는 것뿐이었다.

2001년 1월, 한 남자가 견인차를 끌고 직장에 찾아와 내 차를 끌고 가버렸다. 할부금 상환이 늦어지고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던 거다. 닛산은 기다리다 지쳐 결국 내 센트라를 돌려받았다. 견인차가 사라지고 나서 처음 들었던 생각은 집까지 걸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이고 때문에 에버퀘스트 할 시간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였다.

나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유지해주는 FranchiseOpportunities.com이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점점 직장에서 에버퀘스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최적의 장비를 갖추고 경험치와 골드를 많이 얻는 팁이 실린 사이트를 뒤져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동료가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2001년 2월, 회사의 오너인 조셉 런스포드씨가 나를 사무실로 불렀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네." 그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했다. "자네는 아주 영리한 사람이었네. 자네가 못 할 일은 없을 거란 생각도 들었지. 자네는 내게 미래를 보여줬는데, 요즘 일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더군.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건 자네 머릿속에 프로젝트 생각이 없다는 거겠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네."

나는 눈물을 흘렸다. 비참함을 느꼈다. 차도, 직업도 없었다. 그는 내게 마지막 급료와 함께 지갑에서 120달러를 꺼내어 주고는 내보냈다. 나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룸메이트에게 이 소식을 전하고, 침실로 들어가, 에버퀘스트를 켜고, 모든 걸 잊어버렸다.

"reSTART internet"과 게임 중독 회복 프로그램의 총감독이자 "Video Games & Your Kids: How Parents Stay in Control"의 저자인 힐러리 캐시 박사의 말에 따르면, 현실 세계의 문제를 피하려고 비디오 게임에 빠지는 것은 "비디오게임 중독"의 흔한 원인이다.

"전 그걸 분명히 중독이라고 부릅니다. 인터넷 중독의 하위분류죠. 당신의 상황은 전형적인 비디오 게임 중독입니다. 특히 중독 때문에 실제의 삶이 위축되고 더욱더 가상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점이 그래요."

바로 정확히 내 꼴이었다. 나는 자신감 넘치고 외향적인 젊은이였다. 친구들과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와플 하우스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면서 시간 보내길 즐겼었다. 이제 내 사회생활은 온라인 친구들이 희귀 몬스터와 싸우는 걸 돕거나 길드의 채팅 채널에서 클래스 간의 밸런스를 논하는 일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는 건 담배나 음료가 떨어졌을 때뿐이었다. 월마트에서 파는 0.3달러짜리 고기 파이와 값싼 쌀 몇 자루로 연명했다. 아주 근본적인 욕구만, 가까스로 채워갔다. 에버퀘스트를 켜놓은 채로 의자에 앉아 잠이 드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몇 시간이 지나 잠이 깨면 다시 그 과정을 반복한다.

지금조차도 당시의 기억은 오아시스를 달리고, 레벨업을 하고, 경험치 노가다를 하는 모습으로 흐릿하다. 어머니는 그때를 더 선명히 기억하신다.

"그때는 마이크를 도통 만날 수가 없었어." 최근 어머니의 회상이다. "직접 차를 몰고 먹을 거랑 생필품을 챙겨서 찾아가지 않는 한 연락할 방법이 없었지. 걔랑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었는데, 예전의 그 고운 마음씨랑 유머감각은 모습을 감춰버렸지. 듣는 둥 마는 둥하다가 쉽게 화를 냈어. 또 금방 가라앉아선 그런 말 듣고 싶지 않다고까지 하더구나."

이젠 어머니께 그 때 이야기를 듣는다. 그 정도까지였나 믿기 어렵지만, 나는 부정적인 기억보다 긍정적인 기억에 더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에밀리가 돌아왔던 날처럼 말이다.

잠깐의 희망

해고당한 지 3개월 뒤, 에밀리는 우리 사이를 다시 되돌려 놓기로 했다. 나는 그녀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더 말랐고, 머리카락은 괴상하게 자라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우리가 침대에 누웠을 때, 그녀가 내 배가 쏙 들어갔다고 하자 나는 한 없이 기뻤다. 지금 생각해보면 괴팍한 생각이었다. 다이어트나 운동을 한 것도 아니라, 나는 스스로 영양 부족을 자랑스러워했다.

내 존재는 다시 천천히 진짜 삶과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후 에밀리가 입사원서 더미를 들고 왔다. 그것은 내가 밖으로 나가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길 아래의 Fast Signs에 첫 면접을 보게 하는 자극이 되었다. 지난 몇 달보다 조금은 더 사람 같아 보였고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즉시 일자리를 얻었다. 상황이 바뀌는 것은 놀랍도록 순식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래가지 못했다.

기묘한 뒤틀림이었다. 이제 에버퀘스트 친구들이 날 걱정했다.

접속을 안 하다 보니 그 친구들이 내 유머감각과 열정을 그리워했다. 네 개의 바드 송을 한 번에 엮는 내 능력은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날 필요로 했다. 그들에게 난 중요한 사람이었고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돌아보니 내가 그 아이러니를 그리워한다는 걸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난 다시 에버퀘스트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에밀리가 보지 못하는 밤에만 했다. 하지만, 곧 원래의 정기적인 플레이 일정, 그러니까 깨어있는 모든 시간으로 확장되었다. 자꾸 직장에 늦기 시작했고,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몸이 아프다고 회사에 연락한 뒤 집에서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 운명의 밤이 왔다.

한때 내가 내 인생의 사랑이라고 했던 여성이 발가벗고 침대에 앉아 함께 눕자고 졸랐지만, 나는 계속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레벨 40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드레드랜드에서 많은 적을 원거리 공격으로 요리하며 내 바드 송으로 죽여갔다. 여전히 그때 느꼈던 급박함을 기억한다. 레벨업이 코 앞인데 이 여자가 목표 달성을 방해하려고 한다는 불쾌감. 이게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을까?

그녀는 분명히 이해하려고 했다.

"그때 난 내가 게이머랑 사귀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녀가 최근 나에게 말했다. "그땐 남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고, 친오빠도 마찬가지로 일하고 돌아오면 비디오게임을 했으니까."

8년이 지나 그녀에 대한 내 배려심이 우리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부족했다는 건 분명해졌다.

2001년 9월 말 어느 아침, 나는 직장을 그만뒀다. 당시에 어떤 식으로 내가 그걸 정당화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직장을 그만 뒀던 이유는 늦는 것에 변명 만들기가 지겨워졌고 그저 에버퀘스트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에밀리와 나는 사이가 더 멀어졌다. Fast Signs에 있었을 때 나는 누나를 통해 중고차를 샀다. 지난번에 끊은 딱지 때문에 내 명의로는 보험을 들 수가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딱지는 보험 없이 운전해서 받은 것이었다. 문제를 고치려고 나서기보다는 우울함에 더 깊이 빠져들었다. 나는 에밀리에게 "TAG APPLIED FOR"[footnote]역주: 미국에서 금방 구입한 차량의 번호판에 붙이는 사인. 이 사인을 붙이면 진짜 금방 구입한 차량인지 확인하기 위해 경관이 차를 세우기도 한다고.[/footnote]라고 번호판을 붙이고 차를 가져오게 했지만, 그녀와 어디도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경관이 차를 세우고 감옥에 갈까 봐 무서웠다. 대신 나는 집에서 에버퀘스트를 플레이했다.

마지막으로 (2009년 이전에) 그녀를 본 것은 10월 초 그녀의 생일 이틀 뒤였다. 나는 그녀에게 내 차를 가지고 생일 파티에 가라고 하면서, 같이 가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그녀는 연락도 없이 내 차를 이틀간이나 돌려주지 않는 것으로 대응했다. 나는 차와 차 열쇠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리고 나는 계속 플레이했다.

새로운 시작

1년 전 내가 처음 에버퀘스트의 세계로 들어섰던 12월이 다시 돌아왔다.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독립심 강한 사람에서 수척하고, 면도도 샤워도 않고 외부 세계와는 완전히 격리된 은둔자가 되었다.

한때 내 가장 좋은 친구였던 룸메이트는 나보고 일자릴 찾지 않으면 던져 내쫓아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내겐 어떤 동기도 없었다. 내가 내 자릴 벗어나는 순간은 그저 먹을 걸 얻으러 부모님 집에 가거나, 아파트 온수가 끊겨서 짧게 샤워를 할 때뿐이었다.

깨어 있는 세계 사이를 눈에 띄지 않게 표류하던 그 유령 같은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맙게도 어머니는 나를 최대한 돌봐 주었다.

"내가 알던 애 같지 않았어." 어머니가 그때를 떠올린다. "험상궂고 비루했지. 혹시 자살하거나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지 않을까 무서웠단다. 정말 마음이 아파서, 집으로 찾아오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지."

2002년 1월 1일, 나이 스물여덟,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내 중독을 바로 고칠 수는 없었다. 나는 집에 인터넷을 들여놔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해 다시 온라인에 접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뭔가 바뀌었다. 부모님과 함께 바깥에 나가는 시간이 늘어났고 컴퓨터 앞에 앉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나는 책임이 있었다. 지원체계도 있었다. 그동안 내가 서 있었던 흐르는 모래가 아니라 안정적인 발판을 딛고 나아갈 수 있었다.

두 달 뒤 나는 지역 주유소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이후 조셉 런스포드와 다시 만나 2003년 그가 다시 날 고용할 때까지 도급으로 일을 받으며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다시 한 번 일자리와 여자친구를 얻고 결국에는 룸메이트 없이 나만의 아파트도 얻었다. 그리고 2006년 브라이언 크레센트가 연락을 해와 코타쿠에 글을 쓰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게 된 것이다.

내 문제를 에버퀘스트 탓으로 돌리는 건 쉽다. 일반적으로 사회에서는 아무런 의문 없이 그렇게 받아들인다. 나는 내 삶을 거의 망칠 뻔한 중독적인 비디오 게임의 먹잇감이었노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나는 숨었다. 나는 내 문제로부터 도망쳤다. 직접 다루면 쉽게 해결되었을지도 모르는 문제와 직면하는 대신, 가상의 환상 세계 속으로 숨어 버렸다. 내가 걱정하는 게 있다면, 소니 온라인 엔터테인먼트의 유일한 죄는 숨기에 아주 좋은 장소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플레이하는가를 제어하는 건 내 책임이었다. SOE의 대변인도 내 이야기에 동의했다.

"에버퀘스트는 게임입니다." SOE 대변인의 말이다. "알맞을 만큼 게임을 하는 수천수만의 결제자들은 게임이 제공하는 게임플레이는 물론 사람과의 상호작용도 즐기죠. 어떤 형태의 오락이든 간에, 자신의 플레이 습관을 감시하고 시간에 우선순위를 정하는 건 플레이어 개인의 책임입니다. 개인이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가를 감독하고 제한하는 건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힐러리 캐시 박사도 동의한다. 하지만 게임 개발사들이 게임을 더 중독적으로 만들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리라 추측한다.

"게임을 더 중독적으로 만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개발사들에 일부 비난이 있을 수 있어요. 담배를 더 중독적으로 만드려는 담배 산업과 유사해요. 그게 자기들 이익이 됩니다. 그건 곧, 어떻게 플레이하느냐는 개인의 책임이라는 거죠."

대화 중에, 캐시 박사는 게임을 도박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카지노에 들어가서 5달러를 잃고 그만둔다.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너무 깊이 위험에 빠져들 때를 알기 위해 항상 그 한계를 의식해야 한다.

MMO 중독에 대한 나의 해법은 간단하다. 나는 한때 업무를 방해했던 것을 업무를 위해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내 일을 한다면 이건 더는 도피행위가 아니다. 아마 자신을 속이는 방법일지도 모르지만, 속더라도 내가 챙길 것도 챙긴다.

에밀리는 어떻게 지내느냐 하면, 지금 내가 이걸 타이핑하는 동안 옆에 앉아 페글을 플레이하고 있다. 그녀에게 침대로 가자고 할 테지만, 그녀가 다음 레벨로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난 안다.


해피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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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개:

리넨 :

저도 예전에 울티마 온라인에 미쳐 살 때 저랬던 것 같기도^^; MMORPG뿐만 아니라 여러 게임의 중독성은 참 무섭습니다.

릿군 :

돈이 안되니까 연구 또한 안되겠지만......

물리적으로 중독되는 술이나 담배와는 다른 MMO 중독에 대한

연구가 따로 이루어 졌으면 하는 생각을 요즘 해봅니다.



생각해보면 MMO 중독은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문제라 할 수 있는데

그 피해 사례가 가면 갈 수록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는단 말이죠.......

검은뿔 :

그런데 어째서 게임만큼은 중독일까요?



드라마중독 소설중독 이란 말은 없잖아요?



여기엔 매니아라는 말이 붙죠.



아직 게임이라는 문화가 B급문화로 치부되고 있다는 단면일지도.

페이비안 :

비단 게임 뿐만 아니라 다른 여느 중독도 결국 헤어나온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주변의 도움과 본인의 의지, 그리고 약간의 운이 필요하더군요. 글을 읽다보니, 게임할 시간이 너무 없어서 투덜거리는 건 행복한 고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에 읽었던 글에서 보니, 물리적인 술, 담배 외에는 주로 적극적인 행위가 수반되는 경우에 중독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도박이나 게임은 '스스로 생각하고 연구하는 (혹은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TV 시청보다 훨씬 중독성이 강하다는... 예외적으로 야동중독은 비슷한 강력함이 있다고 하는데, 그건 야동 자체를 시청하는 행위보다, 더 자극이 강한 매체를 찾아 헤매는 것이 적극적인 행위를 수반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구요.

밝은해 :

@릿군 - 2010/07/20 15:14
예, 개발사에서 적극 나서서 연구 지원을 해줬으면 해요.

익명 :

정말 해피엔팅인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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