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4일

크로포드, "그건 예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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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크로포드

저널 오브 컴퓨터 게임 디자인 5호 수록 (1991년~1992년)

원문: It Ain’t Art (원문보기 [영어])


 

우리 직업의 공상 중 하나가 우리가 예술가라는 믿음이다. 게임 디자이너인 우리가 게임을 구성하며 예술을 만드는 것이란 거다. 물론, 디자이너에 따라 그 내용은 약간씩은 다르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게임 디자인이 예술이고 프로그래밍은 아니라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예술을 좀 더 전통적인 예술의 관점에서 정의하며 게임이 담는 그래픽과 음악만을 “예술”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예술의 정의를 자유롭게 하여 게임의 개발과 관련된 모두를 예술가로 칭한다. (“프로그래머는 예술가다! 테스터들도 예술가다! 복사기도 예술가다!”)

거기에는 개인적 허영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것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 업계의 진정한 성질은 우리가 예술을 만드느냐 오락을 만드느냐는 질문의 답에 담겨 있다.

자, 내 답을 말하기 전에, 예술과 오락을 구분 짓는 특성을 말해보자. 명확한 정의를 꾸며낼 수는 없지만, 내 의도를 전달할 만큼 충분히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의 정의

예술은 긴 가운을 걸치고 뿔이 난 헬멧을 쓴 수많은 중년 여성들이 고음으로 노래하는 가운데, 턱시도를 입은 수십의 사내들이 바이올린을 켜고 한 사내가 정말 가볍게 케틀드럼을 두드리는 것이다. 예술은 벌거벗은 풍만한 숙녀들이 실크로 짜여진 구름을 타고 떠있고 작은 천사들이 구석을 장식한 그림이다. 예술은 때때로 “poulet chevalier” 같은 단어들이 섞여있는 깔끔한 프랑스 단어들이다.

오락과 예술 모두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이지만, 예술은 오락보다 인간의 영혼에 더욱 깊게 다가선다. 오락이 웃음을 전달하면 예술은 즐거움을 전달한다. 예술에 비극이 있으면, 오락은 슬프게 만든다. 예술에 열정이 있으면, 오락에는 섹스가 있다. 예술은 ‘쿵’ 하지만, 오락은 ‘빵’ 한다.

예술은 오락보다 맥락을 이해하길 요구한다. 자, 예술과 오락 모두 문맥을 가진다. 모든 매체는 표현의 관습을 만들고 예술가와 엔터테이너 모두 그에 의지한다.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웃긴 부분이 어디인지, 얼마나 빨리 그 부분으로 가길 기대하는지, 얼마나 단순하게 효과적으로 갈지 관객들이 이해하고 있음을 안다.

하지만 예술의 맥락에 대한 요구는 오락보다 더 엄격하다. 예술을 올바르게 감상하려면 더 많은 배경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 대학에서 “오락 감상 강의”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나?

따라서, 예술은 오락보다 더 엘리트주의적이다. 소수의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오락은 대중을 위한 것이고 예술은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에 의한 표현이다. 오락은 관객을 위한 표현이다. 예술가가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 자신이다. 엔터테이너가 가장 먼저 신경 써야 할 것은 그의 관객이다. 예술가는 자신 안에 있는 진실 탐구를 추구한다. 엔터테이너는 관객이 원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한다.

따라서 오락은 본능적으로 상업적이고 예술도 본능적으로 비상업적이다. 오락은 팔 수 있지만 예술은 팔 수 없다. (물론 아는 체 하는 사람들은 예술에 많은 돈을 지불할 것이다. 예술가가 죽은 뒤에.)

이제 말해보자. 나는 컴퓨터 게임 업계에 예술에 포함시킬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오락 사업을 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준다. 이제까지 퍼블리셔나 프로듀서가 이런 말을 했던 적이 없다. “크리스 씨, 이 변화가 제품에 담은 비전에 맞는 건가요?” [맞는 건 아니었다. 한 퍼블리셔 간부가 그런 말을 했었는데, 지금은 더 이상 업계에 있지 않다.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는 오락을 만든다. 예술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다. 컴퓨터 게임에 “예술”이라는 딱지를 붙여주고 싶었던 인상적인 순간들은 많이 있었다. “플래닛폴”에서 로봇 플로이드가 당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순간. “윙 커맨더”에서 동료가 킬라씨 한가운데서 폭발하며 작별을 고했던 순간. “킹스 퀘스트 V”의 훌륭한 아트워크와 “룸”의 좋은 음악과 스토리라인. 그렇다. 컴퓨터 게임에 인상적인 순간, 참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 게임들을 예술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나는 E.T.가 죽었을 때 눈물을 참지 못 했고, 그가 회복했을 때 기쁨을 참지 못 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예술인 영화는 아주 많이 있지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능력 때문에 그것들이 예술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뭐?

여기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응이 있다. “예술이 아니라고 해서 누가 신경을 써요? 무엇보다, 우리는 재미를 만들고 돈을 버는 사업을 하고 있고, 우리가 붙이는 딱지 같은 건 의미 없어요. 우리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우리 스스로 일을 즐기고, 풍족하게 번다면, 그게 예술인가에 대해 신경 쓸 게 뭐 있나요? 그냥 우리 일만 하면 안 되나요?”

이 주장에 대한 내 답은, 오락에 있어 예술의 역할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술은 오락의 원천이고, 모든 엔터테이너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소재의 근원이다. “스타 워즈”는 수세기에 걸쳐 수립된 신화에 그 근간을 두고 있다. 훈련 받지 않은 록 기타리스트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 멜로디와 리듬, 그리고 그가 들어서 배우는 기본 구조는 텔레만, 비발디, 바흐 같은 예술가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제되어 온 것이다. 현대 영화의 촬영술은 모두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고전화가들의 유산이다.

오락은 예술로부터 신선하고 새로운 생각, 새로운 주제,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받는다. 예술은 오락의 밑바탕이다. 말하자면, 예술은 우리 업계의 ‘연구/개발’의 ‘연구’ 측면이다. 우리는 이미 비디오게임 산업과 디스크 기반 게임 산업 사이의 관계에서 이 과정을 보아왔다.

빠르게 움직이는 산업, 특히 하이테크 세계에서는 수익의 10%가 연구개발에 쓰여져야 건강한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돈의 대부분은 ‘개발’ 측면, 우리 개발자가 하는 것에 투자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래도 업계는 몇 퍼센트의 ‘연구’ 측면에도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예술적 측면에 그리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우리에겐 팰러앨토 연구소도, 벨 연구소도, 게임의 근본적 연구를 위해 기부할 대학도 없다. 심지어는 기발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조차도 없다. 우리에게 연구란 어제 컴팩트 디스크에 담겼던 게임들에 더 많은 그래픽, 사운드 애니메이션을 추가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연구가 아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 업계와 우리의 디자인 목표를 더욱 진지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실질적인 예술적 노력이나 성취는 하나도 없으면서 공연히 우리를 예술가라고 선언하는 것은 우리의 실패를 고칠 필요성을 가려버리는 자기 본위적인 행동일 뿐이다.

예술적 시도가 이 업계와 관계없는 것 취급하는 것은 냉소적이고 좁은 시야이다. 우리 업계가 우리 노력의 일부를 진정 예술적인 제품을 위해 쏟아서 예술적인 소득을 얻으려 하지 않는 한, 우리는 침체될 것이다. 어느 오락 사업이 그렇듯, 침체는 몰락을 부른다.

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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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블로그 포스트를 통해서 왔습니다 ^^;

흥미로운글들이 많네요~~~유익하게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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