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4월, 저널 오브 컴퓨터 게임 디자인 1권 1호 수록
원제: The Interaction Circuit (원문보기[영어])
컴퓨터 게임의 본질을 보는 유용한 방법 중 하나는 ‘상호작용 순환’(interaction circuit) 개념을 통하는 것이다. 이것은 게임 진행과정에서 플레이어와 컴퓨터 사이의 정보 흐름을 나타낸다. 먼저 다른 예술 매체에서 예술가와 관객 사이에 정보가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해보자.
예술가 - 관객
예술가는 말하고, 관객은 듣는다.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으로, 예술가의 지적·도덕적 우월성으로 정당화된다. 그렇지만 컴퓨터 게임에는 완전히 새롭고 더 우월한 방법이 있다.
컴퓨터의 말 - 인간의 생각 - 인간의 말 - 컴퓨터의 처리
‘상호작용 순환’이라고 불리는 작은 다이어그램은 게임과 플레이어 사이에 생기는 관계의 본질을 묘사한다. 이 순환을 엄격히 검토하면 좋은 게임 디자인을 위한 지침을 볼 수 있다. 나는 게임 경험의 질이 어떤 의미에선 이 순환을 흐르는 정보의 양과 단순한 관계가 있다 생각한다. 말하자면, 이 순환에 더 많은 것이 흐를수록 플레이어에게는 더 강렬하거나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 상호작용 순환에 최대의 정보가 흐르게 할 수 있을까? 그 비법은 그 순환 고리의 각 네 가지 항목을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네 개의 항목이 많은 정보를 싣고 순환 고리를 달릴 수 있도록 최대한의 마력을 갖게 디자인해야 한다. 또 어떤 항목도 정보 흐름의 병목이 되어선 안 된다.
각 항목을 차례로 살펴보자. 가장 최상급의 항목인, '컴퓨터의 말'로 시작해보자. 이것은 화면과 소리라는 매체를 통해 전송되는 부가적인 정보로, 컴퓨터 게임 디자이너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항목이다. 구식 수단인 정보의 일방적 전달("나는 말한다, 너는 들어라")과 거의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이 항목은 디자이너가 가장 주목하면서 컴퓨터 자원의 대부분을 취하게 된다. 어떤 게임은 자원 거의 모두를 이 한 항목에 쏟기도 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은 컴퓨터 게임 디자인에서 가장 컴퓨터답지 않은 면이다. 그게 영화나 소설과 다름 없다면 왜 사람들이 귀찮게 컴퓨터 게임을 만들겠는가? 오래된 군사 격언이 있다. "당신이 스스로 정한 곳에서 싸우라." 자기 고유의 능력을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 아래서만 싸워야 한단 말이다. 영화와 그래픽 출력으로 경쟁하는 것이나, 소설과 프로그램 코드로 경쟁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 같다. 그들에게 없는 '처리 능력'을 활용하지 않고 말이다.
두 번째로 볼 항목은 '인간의 생각'이다. 게임 디자이너는 이것에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그걸 무시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정확히 무엇이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가? 그 두뇌의 어떤 부분을 우리가 시뮬레이션하려는 것인가? 업계 초기에, 우리는 인간의 뇌 중 특히 소뇌에 관심을 가졌었다. 나아가서는 퍼즐과 전쟁게임으로 통해 분석적 기술에만 호소해야 할 거라고 단정해버렸다. 나는 우리가 게임에서 아직 도달하지 못 한 인간 정신 활동이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인간 사고의 가장 개인적인 측면, 즉 직관에 어떻게 도전하는가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게임으로 더 엄청난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슬프게도, 기술적 전문성을 강조하는 우리 직종의 경향은 인간 사고를 강조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든다. 프로그래머들은 유닉스의 모든 명령어 구문을 암기하지 언어학의 기초를 이해하지는 않는다. 디자이너는 CRT 모니터 상에서의 출력 기술의 요점만 알지, 간상체와 추상체의 차이는 모른다. 버스 구조에 대해 하루 종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뇌량(腦梁)에 대해 말하면 눈을 껌뻑거린다. 나는 그것이 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재하는 우리에게 당연히 필요하다 생각한다.
세 번째 항목은 '인간의 말'이다. 이것은 그리 많은 게임에 들어있지 않은데, 정보가 순환을 자유로이 흐를 수 없게 하는 진짜 병목이다. 일반적인 슈팅 게임의 진행을 생각해보라. 컴퓨터가 이렇게 말한다. "큰 녹색 우주선이 우주를 날아가고, 화려한 노란 불꽃이 당신을 향해 날아가고, 붉은 폭발, 검은 우주, 별들..." 인간 플레이어는 그 대답으로 뭘 말하는가? '위로', '아래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아니면 '쏘기'다. 이런 제한된 입력으로 어떤 풍부한 상호작용을 얻을 수 있겠는가?
물론, 인간 플레이어에게 보다 풍부한 입력을 제공하지 못 하는 이유는 정말 많다. 다섯 가지 동사 밖에 말하지 못 하는 조이스틱 입력장치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또 인간 플레이어가 게임이 사용하는 인터페이스 언어를 배워야 한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새로운 입력 체계를 숙달하기보단 컴퓨터의 출력을 이해하는 게 훨씬 쉽다. 특히 전자가 촉각적이고 후자가 시각적일 때 더 그렇다. 하지만, 이런 사정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입력 기능 문제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함을 의미할 뿐이다. 잘 디자인된 게임은 컴퓨터가 플레이어에게 말한 것만큼 플레이어가 답할 수 있게 해준다. 이상적으로는, 컴퓨터가 이용하는 표현 언어와 정확히 같은 것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이루기 어렵다.
상호작용 순환의 네 번째 항목은 '컴퓨터 처리'다. 이것은 게임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으로, 순환을 마무리 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컴퓨터의 처리는 플레이어의 입력과 컴퓨터의 출력에 관계된 유일한 것이다. 그 관계는 반드시 합리적이고, 흥미로워야 하며, 그럴 듯 해야 한다. 만약 내가 컴퓨터 캐릭터인 이세벨에게, "이세벨, 내 사랑, 나는 전쟁터에서 내 의무를 다해야 하오"라고 말하면, 이세벨은 눈물을 터트린다. 이세벨이 내 말의 의미를 파악하고 반응하는 데에는 분명 엄청난 양의 처리가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런 처리가 없으면 순환 고리는 부러진다. 많은 게임들은 이 영역에서 약하고 그에 고통 받는다.
상호작용의 순환이 컴퓨터 게임을 평가하는 데 결정적인 수단은 아니지만, 디자인의 흠을 찾아낼 수 있는 유용한 정신적 도구이다. 그것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컴퓨터의 말' 항목에 덜 집중하고 다른 세 가지에 더 신경 쓰는 것이 좋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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