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7일

여성의 인권은 얼마나 쉽게 상실될 수 있는가, 게임이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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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리샤 헤르난데즈 | 2012년 8월 23일 | 원문보기

[역자의 말: 조선시대의 남존여비를 소재로 하며, 얼마 전 정식으로 한국어를 지원하게 된 인디게임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를 다룬 코타쿠 기사입니다. 8월 기사인데 그 때 초벌 번역해놓고 보존 -_-; 해뒀다가 지금에야 올리네요. 안나 앤스로피의 글을 제외하고 모든 링크는 번역하면서 임의로 한국어 링크로 대체했습니다.]

어느 날 깨어나보니 사람들이 당신은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라고 상상해보라. 혹은 당신이 읽고 쓰는 방법을 배울 가망이 없는 세상이라고, 그럴 능력이 있다해도 그 증거가 될 자료와 편지를 파기해야 하는 곳이라고 상상해보라. 말하는 언어부터, 갈 수 있는 곳, 살아가는 방식, 결혼 상대까지, 삶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고 상상해보라. 이런 현실에 저항하려 한다고…그리고 그 대가로 혀가 잘리게 된다고 상상해보라.

이 모든 일이 우주여행과 극저온 보존이 완성된 때에 일어난다고 상상해보라.

그게 가능할까? ‘진보’가 없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까? 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내일로 가는 길을 포장해주지 않을까? 그것이야말로 과학의 핵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약속 아니었던가?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의 개발자 크리스틴 러브는 그 답을 확신하지 않는다. 올해 출시되어 많은 찬사를 받은《아날로그》는 앞서 말한 초현실적으로 들리는 전제와 발전된 문명이 빗나갔다는 발상을 바탕으로 한 게임이다. 이 전제 위에서 게임은 억압받는 한 여성의 비참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견딜 수 없었던 이 여성은 광기에 휩싸여 우주선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

이 이야기는 실제 한국 역사에 존재하는 조선왕조를 바탕으로 한다. 9/11이 미국을 테러와의 전쟁이 지속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듯이, 이 시기 한반도 사회는 내정 갈등과 위기로 인해 퇴보한 때였다.

크리스틴 러브는 《아날로그》의 DLC인 〈헤이트 플러스〉를 만들며 본편에서 부족했던 부분과 씨름하려고 한다. 어떤 플레이어는 《아날로그》에서 묘사된 사회가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 언제나 한 발짝 떨어져있을 뿐임을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냥 ‘아, 이건 옛날 이야기고 지금은 다 괜찮아!’ 하고 넘기기 쉽죠.” 크리스틴이 메신저를 통해 전해왔다. 조선왕조의 핵심 이념이었던 성리학이 현대에서 부활할까? 그럴 것 같진 않다.

물론 ‘완전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떠오르는 과학 분야인 역사동역학은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낡은 관용구에 그치지 않음을 밝혀냈다. 그 실재는 수학을 통해 점점 더 증명되고 있다. 여성이 자기 몸을 관리하는 방식을 간섭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이 미디어에 나타나는 모습을 보면, 여성의 기본 인권이 박탈되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게 아주 희한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건 커다란 퇴보였습니다…소름끼칠만큼 지금 북미의 상황이 생각나는 방식이죠! 그게, 어려운 시기가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를 일으키잖아요. 그러면서 현대적 발상을 전통으로 둔갑시키죠.”

“성리학의 신조 중 많은 부분은 사실 전통이었던 적이 없어요. 그걸 보면 사실은 70년대에서 비롯된 낙태 반대를 기독교 신앙의 근간에 있는 것으로 보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과거 조선이 공자의 말을 선별적으로 가져왔듯이, 여기서는 성경 글귀를 선별적으로 가져오는 겁니다.”

게다가 현대에는 나오미 클라인이 ‘쇼크 독트린’(shock doctrine)이라 부르는 현상이 부족하지 않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쇼트 독트린이란 여성 인권의 박탈처럼 문제가 있는 개혁을 밀어붙일 기회를 마련하려고 고안되는 위기를 말한다. 물론 가설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권리를 침해당하는 이유다. 애국자법이 그 예다.

게임 디자이너 안나 앤스로피는 이를 다음과 같이 잘 설명했다. “여성의 종말은 기술적 퇴화가 아닌 사회적 퇴화의 공포다. 알 수 없는 낯선 미래가 아니라 너무도 친숙한 과거의 억압이다. 그것이 묘사하는 악몽은 먼 미래가 아니라 가까운 미래다. 주인공은 나나 당신처럼 자기 집에 살고 원하는 옷을 입고 자고 싶은 사람과 자는 여성이지만, 하룻밤 사이에 세상이 바뀌어 소유물이 되었다. 남성의 아이를 품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숨쉬며 걸어다니는 자궁이 되었다.”

《아날로그》의 주인공이 십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크리스틴에게 이 이야기를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녀가 개발도중 술에 취해야 겠다고 말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확실히 하자면 글을 쓰는 사람에게 흔한 일은 아니다. 소재가 역겨워서 글을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작가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보지는 못 했을 것이다…하지만 아날로그를 플레이해보면 그게 어떤 기분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나 역시 플레이하면서도 불편하고 구역질 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맙소사, 악당의 머릿속에 몇개월 씩이나 사는 건 끔찍할 거에요…완전히 진화 심리학자잖아!” 크리스틴은 외쳤다.

그래도 견뎌내는 건 중요한 의식이었다. “사람에, 또 사회에 어떻게 그런 생각들이 뿌리내리는지 관심이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서 ‘그래, 난 여자가 싫다. 여자는 글을 읽지 못 하게 했으면 좋겠다’ 말하지는 않잖아요.”

크리스틴의 친구인 내가 볼 때 그 호기심은 단지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보인다. 가벼운 자폐증을 겪고 있는 크리스틴은 때로 사회적 교류, 느낌과 정서의 이해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녀가 만든 게임 대부분에 AI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초기 게임인 《디지털: 어 러브 스토리》는 AI에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틴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문제를 받아들이는 것, 극복하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혐오 사회의 관점에서 글 쓰는 방법을 궁리하는 데에는 더 실질적인 이득도 있다. 그것이 암시하는 현실에 더 잘 대처하는 방법을 숙고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단지 역겹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건 핑계라고 생각해요. 더구나 이해하지 못 하는 것과 싸울 수는 없잖아요.” 크리스틴은 설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렇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약한 걸 보면 ‘난 그렇지 않다. 난 다르다’고 생각하죠. 전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그 원인을 이해하지 않는다면요.”

〈헤이트 플러스〉는 본편 바로 이후, 당신의 캐릭터가 우주선에서 일어난 비극한 밝혀내고 지구로 돌아가는 때의 이야기다. 크리스틴은 사회가 붕괴하고 쇠퇴한 철학으로 역행하게 된 정황을 비출 계획이다.

본편에서는 그런 정황이 의문으로 남아있었다. 플레이어는 무슨 일이 일어나서 사회가 그렇게 변했는지 알 수 없었다. 〈헤이트 플러스〉는 《아날로그》가 남겨놓은 커다란 의문에 드디어 답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 역시 본편처럼 실제 역사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거라는 점을 생각하면 특히 매력적이다. 크리스틴은 “여성의 인권을 완전히 침해하는 설득력 있는 정치정책”을 그려내려고 한다. 그녀는 본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두꺼운 한국 역사책들을 깊이 파고들 생각이다.

그녀가 밝히길, 만약 《아날로그》가 슬픈 이야기로 느껴졌다면 〈헤이트 플러스〉는 뭔가 다를 거라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신조선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뮤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거에요.”

헤이트 플러스는 내년 1월 출시를 노리고 있다.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 한국어판은 스팀공식 웹사이트, 제리얼넷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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