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일

게임비평 모음: 그랜드 쎄프트 오토 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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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밝은해입니다.

게임 비평을 위한 커뮤니티 블로그를 표방하는 크리티컬 디스턴스(Critical Distance)라는 블로그가 있습니다. 자체적 비평 전달보다는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게임 비평 텍스트를 연결하고 종합하는 데 집중하는 블로그이니, 해외의 게임 철학과 사상을 전하고 싶어 하는 디자인과 플레이 문서고가 놓칠 수가 없죠!

그래서 크리티컬 디스턴스에서 읽을만한 자료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번역해나갈 생각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정 게임에 대한 비평을 수집하는 “게임비평모음”(Critical Compliation)은 특히 주목할 만 한데요. 읽어보시면 게임에 대한 생각이 이렇게 깊고 다채로울 수 있음에 놀라고 즐거워하시리라 장담합니다. 그 첫 번째로, 논란과 찬사라는 양극단을 동시에 걸으며 게임 세계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는 게임, “그랜드 쎄프트 오토 IV”(Grand Theft Auto IV)의 게임비평모음을 번역했습니다.

글에 들어가기 앞서 한 가지 유념하실 것은, 이 글에 나타난 비평문은 모두 ‘이미 게임을 해봤다’는 전제 하에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어떤 게임인지 알려주는 ‘리뷰’가 아니라 게임을 해석하려는 ‘비평’이기 때문인데요. 그러니 게임을 해보지 못 한 사람들은 스포일러에 노출되거나 해석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번역문에 별도로 게임 속 내용에 대한 역주는 달지 않았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게 많은 게임이니 아직 안 해보셨다면 먼저 게임을 해보시길 권합니다!

즐기세요 :)



제공: 크리티컬 디스턴스 (Critical Distance)
저자: 마이클 클락슨 (Michael Clarkson)
원문보기 [영어]


“그랜드 쎄프트 오토 IV”(Grand Theft Auto IV, GTA IV)는 발매와 함께 예술로서의 게임의 개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환영 받았으며, 주류 게임시장에서도 역시 환영했다. 또 이 게임은 늘 그렇듯 극우 보수파들과 불쾌해 하는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논란을 야기했다. 만점을 연발한 곳도 있고, 짠 점수를 준 곳도 있고, 인터넷 상의 모든 리뷰 사이트 덧글란에서는 게임의 지지자와 비판자가 전쟁을 치렀다. 당시 그것은 실제 게임에 대한 것보다는 GTA IV를 둘러싼 열기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는 듯 했다. 시간이 흘러, GTA IV가 게임에 대한 대중의 인식에 혁명을 일으키지도, 십대 폭력범죄의 난행으로 세계를 종말로 몰아넣지도 않았음을 인식하고 나서는, 게임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랜드 쎄프트 오토 IV”는 순수한 샌드박스의 창발적인 플레이와 선형적 경험의 지시된 플레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고, 따라서 다양한 방식으로 비디오게임의 최고와 최악, 그 잠재력의 무한함, 그 상상력의 천박한 한계를 대변한다.

한 도시의 이야기

GTA IV의 배경인 리버티 시티(Liberty City)는 게임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찬사를 받은 유일한 부분이다. 레이 알렉산더(Leigh Alexander)는 이 시리즈의 업적을 세계 구축으로 칭하며 구축된 세계가 우리의 세계와 너무도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볼 때, GTA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끊이지 않는 불만이란 사실 딱 우리가 사는 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불만이다. 로렌조 왕(Lorenzo Wang)은 날씨 효과와 빛, 장소감이 그 세계를 활기 넘치는 대도시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지적했다.[footnote]역주: ‘장소감’[sense of place]은 어떤 장소를 그 장소이게 하는 특징 혹은 사람이 그 장소에 느끼는 특유의 감정, 그 장소에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footnote] 다니엘 퍼비스(Daniel Purvis)에 따르면 게임 시스템에 구축된 굉장한 수준의 디테일이 이 공간을 단순히 탐험하는 것조차도 마법같은 경험으로 만들어 준다. 톰 아미티지(Tom Armitage)는 이 디테일과 넓이가 플레이어를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니코 역시 그랬고, 플레이어는 그것으로 니코가 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이 도시는 생생한 웅장함과 광대함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 레모(Chris Remo)는 그에게 진정 리버티 시티가 몰입되는 세계로 다가오게 된 것은 건 니코의 삶에 있어 일상적인 부분이었다고 한다. TV를 보고, 친구와 놀러 나가고, 톨게이트에서 감속하는 것이 도시 지형의 연속성보다 더 효과적으로 도시에 끌리게 만들었다. 루이스 덴비(Lewis Denby)도 그와 비슷하게 특유의 소소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에 깔린 GTA IV의 위대한 아름다움이 그를 세계에 빠져들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IGN 블로거 Napoleon1066은 이 일상적인 행위에 대한 주의가 니코와 다른 인물들이 더 관계를 가지도록 한다고 느꼈다.

리버티 시티가 가진 힘의 또 다른 측면은 플레이어의 행위에 대한 반응에 있었다. 이 점에 관해선 톰 프란시스(Tom Francis)가 유포리아(Euphoria) 엔진이 적용된 캐릭터 움직임이 세계를 그럴듯한 것으로 만드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고 설명했다.[footnote]역주: 유포리아는 내츄럴 모션(NaturalMotion)사가 만든 3D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위한 엔진이다. GTA IV는 이 엔진을 사용한 첫 게임이었다.[/footnote] 유포리아와 인공지능이 제어하는 보행자의 반응 역시 크리스 베이커(Chris Baker)가 자신의 폭력적 행동에 대한 의문을 던지게 만드는 데 특히 효과적이었다. 짐 스털링(Jim Sterling)은 플레이어가 리버티 시티와 싸울 때, 도시는 그럴듯한 방법으로 맞서 싸운다고 지적했다. 이 반응 패턴은 바비 슈바이처(Bobby Schweizer)가 GTA IV의 공공 공간을 게임플레이의 관점에 있어 위협으로 묘사하도록 이끌었다. 경찰의 신경을 거스르거나 여러 곳에서 총알세례를 받을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찬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옵저버”의 기사에서 로라 커밍(Laura Cumming)은 도시의 서사시적인 면을 칭찬했지만, 비디샤(Bidisha)는 그것이 끌릴 만큼 신비롭지도 사실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미치 크르파타(Mitch Krpata)는 이따금 일어나는 인공지능 고장, 특히 거리의 경찰에 관한 것이 몰입을 깨트린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픽셀빅센(PixelVixen)은 리버티 시티가 순전히 하나의 훌륭한 장난감이라고 주장했다.

니코 벨릭의 기묘함

마법이든 일상적이든, 플레이어는 니코 벨릭의 페르소나를 통해 리버티 시티를 경험한다. 그는 한때 발칸전쟁에 참전한 병사였고, 그 분쟁에서 기억 속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남아 있다. 그 경험 때문에 모질고 냉소적인 니코는 부와 권력을 쥐려는 불타는 욕망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인이 삶이 그에게 가르친 유일한 특기이기에 지하 범죄의 일원이 된다. 헤더 채플린(Heather Chaplin)이 NPR에 쓴 글처럼, 니코는 그의 과거가 실제로 그를 무겁게 하는 것처럼 차분하게 도시를 걷고, 그가 하는 것에 거의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블로거 Vitz711도 니코의 지하 범죄로의 여정은 희망과 성실의 상실에서 비롯되었다며 같은 의견을 말했다. 짐 스털링이 썼듯이 니코는 그의 행동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으며, 그의 상호작용과 게임 세계의 작용을 통해 플레이어는 그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의 도덕적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니코는 자신만의 규범을 가진 듯 하다. 토니 라이스(Tony Rice)는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니코라면 어떻게 할까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럼에도 니코는 일종의 즐거움을 보인다. 그는 게임의 총격전에서 큰 소리를 치고, 한 번 그의 손에 총이 들어가면 얼마나 많이 죽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컷씬의 그는 끊임없이 폭력에 회의를 가지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게임 파트에서 살상을 멈추지는 않는다. 트렌트 폴락(Trent Polack)과 샤무스 영(Shamus Young)이 이것을 지적했다. 크리스티안 마예브스키(Krystian Majewski)는 니코의 비극적 배경이 모든 행위를 그럴듯하게 만든다고 느낀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 스펜서 그린우드(Spencer Greenwood)는 니코의 범죄에 대한 태도를 다루는 어색한 방법에 배반과 소외를 느꼈다. 크로스블로그 대화 세번째 파트에서 스테판 토틸로(Stephen Totilo)는 그가 니코라는 인물을 반사회적 인간쓰레기 이상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응가이 크로알(N’Gai Croal)은 게임이 우리에게 매니 에스쿠엘라와 브루시 키버츠 같은 자기기만적인 인물을 끝없이 보여준다는 것을 지적했다. 니코 역시 그런 패턴에 빠질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이런 모순도 다른 선택이 없다고 스스로 확신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다. 시난 쿠바(Sinan Kubba)는 니코는 불행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그가 처한 상황의 무익함도 잘 인식하고 있는 남자라고 지적했다. 그 자기지각이 그가 가진 원칙에서 그를 구제할 수 있지 않았을까? 다니엘 바이센베르거(Daniel Weissenberger)는 이것을 한 단계 더 앞으로 진전시켜, 니코의 감정적 수동성이 그의 핵심 특성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행위가 전적으로 자신을 정의하도록 놔둔다. 니코는 폭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싫어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어떤 사람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친구와의 대화에서 니코는 전쟁경험이 자신을 “파멸시켰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그저 그의 변명인가?

아마 그런 모호함은 이런 종류의 게임에선 피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웨스 에델렉(Wes Erdelack)이 지적했듯이 이런 종류의 게임은 하나의 딜레마에 직면한다. “한 편으로는 게임의 주인공이 플레이어의 선택을 반영해야 하는데, 다른 한 편으로는 특정한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톰 아미티지는 니코가 얼마나 자주 친구들과 놀러 갈 것인지에 대한 플레이어의 결정이 인물에 대한 플레이어의 이해를 의도치 않게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니코라는 인물의 모순됨은 심지어 에델렉이 제시한 딜레마에 대답하는 디자인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벨류에이블 게임즈에서의 원탁 토의에서 한 참가자가 말했듯이, 니코는 다양한 동기를 담은 “이념적 샐러드 바”라서 플레이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골라 가지고 갈 수 있다. 이는 플레이어에게 인물의 인식에 대해 단순한 종류의 제어권을 준다.

모래 위에 선을 긋다

니코 같은 강력한 중심인물의 존재는 GTA IV를 시리즈의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만들었다. 스테판 토틸로는 크로스블로그의 두 번째 파트에서 샌드박스 게임플레이가 시리즈의 명함인데 이 게임에선 인물과 서사가 그 자리를 대체해 해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응가이 크로알은 그 새로운 방향성은 환영했지만, 그 핵심에 컷씬 개발자가 감독한 서사와 게임플레이어의 플레이어 주도의 이야기 간의 근본적 분리가 있다고 느꼈다. 본질적으로 인물의 행위와 샌드박스 게임플레이가 관습에 벗어나기 쉬운 그랜드 쎄프트 오토의 경우, 제한된 선형적 서사의 부과는 더 큰 제약으로 느껴질 수 있다.

역동적인 샌드박스 세계와 선형적으로 짜여진[scripted] 서사의 조합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인지되었다. 첫 번째는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는 샌드박스 플레이의 불가함이다. 던컨 파이페(Duncan Fyfe)는 이 문제를 간결하게 묘사했다. “그건 마치 영화가 비디오게임에 스테이플러로 박힌 것 같다.” 플레이어가 어떤 선택을 내리든 니코나 이야기에는 접점이 생기지 않고, 미리 쓰여진 틀 앞에서 부서진다. 벤 프릿츠(Ben Fritz)는 GTA IV가 플레이어에게 니코라는 인물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면서 왜 게임 속 인물 누구도 그 점을 ‘말하지’ 않는지 의아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자유형식[free-form] 게임플레이는 다른 방식으로 믿음에 영향을 끼친다. 벨류에이블 게임즈 원탁토론의 참가자들은 왜 니코가 창녀를 이용하거나 스트립 클럽에 가는 행위가 애정 관계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지 의아해 했다. 게임의 서사는 부차적으로라도 플레이어가 아무나 쏠 수 있는 자유를 수용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톰 아미티지는 몇 개의 포스트에서 남 부리길 좋아하는 제프를 죽이기로 한 그의 결정을 게임이 부정한 것과 관련해, 결국에는 게임이 그를 위해 제프를 없애버렸을 때 엇갈린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또 다른 중대한 문제는, 비록 이 시리즈 고유의 것은 아니지만 게임의 미션에 있어 과도한 작가적 통제가 행사된다는 것이다. 샤무스 영은 GTA IV의 미션은 과도하게 짜여진 딱딱한 과업이라고 지적했다. 플레이어는 미션에서 정확히 개발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밝혀내거나 아니면 ‘지겹도록’ 반복해야 한다. 척 조단(Chuck Jordan)은 각 미션을 적어도 두 번은 플레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번은 뭘 할지 알기 위해서, 다음은 실제로 미션을 성공하려고. 블로거 Zulu에 따르면 GTA IV는 제한된 미션 목표로 샌드박스라는 느낌을 감소시키고 있다. 게다가, 어떤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특정한 인물이나 차량을 무적으로 만드는 게임의 속임수가 아더 B를 분노케 했다. 여러 사람들이 대본을 모르는 액션 영화를 연기하는 경험에 비유했다.

이 느낌은 록스타 게임즈의 공인된 영화사랑에서 비롯된 듯 하다. 댄 하우저(Dan Houser)[footnote]역주: 록스타 게임즈의 부사장으로 회사에서 만드는 게임의 창조적인 면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그랜드 쎄프트 오토 시리즈와 록스타 게임즈 게임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footnote]가 벤 프릿츠와의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록스타는 자신들이 다른 게임이 아니라 영화와 경쟁하고 있다고 본다. 모든 사람이 이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보스 논누(Boss Nonnu)의 혹평에서 그는 게임을 영화와 함께 녹여내야 한다는 강박은 당혹스럽고 유치하다고 주장했다. 크로스블로그 대화의 첫번째 파트에서 스테판 토틸로는 게임이 이 점에서는 실패했으며 우리를 영화를 플레이하는 지점까지 이끌지 못 한다고 설명했다. 그 목표가 스스로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웨스 에델렉은 GTA IV나 “폴아웃 3”(Fallout 3)에서처럼 장엄한 이야기를 동반하는 광대한 열린 세계는, 게임플레이의 메커닉이 개발자의 서사와 부합하는 플레이어의 서사를 전개하지 않는 한 꽉 짜여진 페이스로 전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저스틴 마크스(Justin Marks)는 GTA IV를 여러 게임 중 한 사례로 들며, 개발자들이 서사를 컷씬의 사용을 통해 포장해서 얹기 보다는 게임플레이를 서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척 조단(Chuck Jordan)은 게임이 초기에 플레이어와 서사에 대한 관점과 개발자의 관점을 제대로 일치시키지 못 했다고 지적하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의 진정한 잠재력은 플레이어와 개발자 간의 협동에 있다고 주장했다. 샤무스 영은 게임을 “세인츠 로우 2”(Saints Row 2)와 비교하며 이 점에 있어 GTA IV가 가장 근접한 것이 서사 전개에 대한 보상으로 새로운 게임플레이의 가능성을 나누어 주는 접근법에 있다고 했다.

서사와 게임플레이 간의 긴장상태는 게임의 주된 특징이 서로 모순한다는 시각을 야기하기도 했다. 카를로 바바라(Carlo Barbara)는 게임을 서로 대립하는 힘 사이의 거의 불가능한 균형잡기로 묘사했다. 그리고 심지어 웨스 에델렉은 GTA IV가 올해의 게임이었음을 주장하면서도 “GTA IV는 그것을 단순히 합한 것만도 못 하다. 그 자체로 모순되며, 분리된다”고 인정했다.

소음과 광기로 가득하지만, 총알을 의미할 뿐이다[footnote]역주: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 나오는 대사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소음과 광기로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다)의 변형.[/footnote]

의견은 게임의 이야기가 시리즈의 게임플레이 특성을 희생한 만큼 역할을 했느냐는 데서도 갈렸다. 트렌트 폴락은 게임의 느긋한 도입부를 칭찬했다. 그것이 첫 진짜 총격전을 게임의 분위기가 전환되는 계기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관점에서 게임 후반부에 긴장을 높이려는 시도는 그가 게임을 “시시하고 터무니없는 마피아식 피날레”라고 부르도록 했다. 던컨 파이페는 GTA IV의 진짜 비극은 록스타가 이민자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던지고서 범죄에 대한 시시한 이야기로 전환했다는 데 있다며, 게임이 범죄에 더 집중하게 되면서 망가졌다고 주장했다. 비디샤는 옵저버에 쓴 기사에서 그것을 “악당 대 악당의 살인 포르노”라고 평가절하했고, 톰 칙(Tom Chick)은 결국에는 전형적인 갱스터 줄거리와 저열한 풍자로 가라앉는 시나리오를 이 게임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로 취급했다. 척 조단은 평이하다고 느끼기까지 했다. “진심으로 나를 화나게 했다고 인정한다. 실제로,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줄거리의 구조 역시 비평의 대상이 되었다. 저스틴 케번(Justin Keverne)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니코에게 돈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의 핵심 동기가 게임 후반에 플레이어가 거의 수천수만 달러를 가지게 되면서 쓸모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록스타가 만들고 싶어했던 컷씬과 설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식과 인물의 동기를 지나치게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많은 이들이 줄거리의 방향성과는 별도로 게임 속 인물들을 사랑했다. 블로거 dvader654는 조연, 특히 게임 초반의 조연들이 다채롭고, 독특하고,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게임이 후반에 갈 수록 개성 없는 전형적인 마피아들이 나타나며 그들을 무시한 점에 실망했다. 픽셀빅센은 드웨인 포지가 2008년 최고의 조연 중 한 명이라고 느꼈다. 다니엘 퍼비스(Daniel Purvis)는 “로스트 앤 댐드”(The Lost & Damned)의 인물들이 더 사실적이고 흥미를 자아낸다고 느꼈다. 웨스 에델렉은 조연의 힘은 인간 상호작용을 설득력 있게 쓰는 록스타의 솜씨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물들이 보편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톰 칙은 인물들이 주로 잔혹하고, 단순한 폭력배라서 “로스트 앤 댐드”를 그만 두었다. 톰 크로스(Tom Cross)는 그 인물들이 전형적으로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해서 본편을 그만 두었다.

게임을 끝까지 한 사람들은 놀랄 만큼 가라앉은 결론을 발견했다. 니코가 게임 도중에 어떤 결정을 내리든 간에, 그는 결국 그에게 중요한 사람을 잃게 되고, 그의 복수 행위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 한다. 블로거 yamaster가 지적했듯, 플레이어가 우정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까지 니코 벨릭이란 인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이야기는 결국 플레이어가 만든 것을 파괴하도록 한다.

카르마 레벨이 아니라, 수배 레벨

시리즈에 대한 대중의 인지와 그 게임플레이를 볼 때 GTA IV에서 도덕의 역할을 탐구하는 것이 좀 이상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이 게임은 매튜 카플란(Matthew Kaplan)이 지적하듯 경찰을 너무 가볍게 살해할 수 있는 범죄 시뮬레이션에 속하기 때문이다. 레이 알렉산더는 션 벨 살인사건에 분노한 몇몇 뉴욕 시민이 게임에 흥미가 있다[footnote]역주: 결혼을 앞두고 클럽에서 친구들과 총각파티를 벌이던 남자 션 벨(Sean Bell)이 잠복중이던 경찰의 오인으로 50여발의 총알세례를 받고 사망한 사건. (참고링크) GTA IV가 경찰을 죽이기 쉬운 게임이라는 점이 피해자와 비판자들의 사건에 대한 분노와 맞물린다.[/footnote]고 전했다. 이 게임은 또 창녀를 산 뒤 그를 죽여서 준 돈을 뺏을 수 있다는 점으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GTA IV는 그런 행위를 해도 플레이어를 벌하지 않고, 선악의 급수를 올리거나 내리지도 않는다. 조시 브릭(Josh Brick)이 말했듯, “플레이어가 스스로 자신의 윤리를 판단할 수는 있지만, 그저 자신의 윤리일 뿐이지 게임은 그것에 아무 것도 관여하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그랜드 쎄프트 오토 시리즈를 옹호하는 관점은 그것이 혐오스런 행위를 그저 가능하게 만들어 줄 뿐이라는 점이다. 크리스 베이커가 지적했듯, GTA IV에 대한 대중의 인지가 상대적으로 온순한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난폭한 행동들에 박혀 있고, 게임은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폭력을 찬미하지도 않는다. 그렇다. 플레이어는 창녀를 죽일 수 있지만, 거기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그것이 상황으로 하여금 플레이어의 도덕성을 시험하게 하는가? 벨류에이블 게임즈 원탁토론의 한 참가자가 말했듯, 진정 도덕적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비도덕적 선택이 가능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어떤 플레이어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니코의 태도와 세계가 그를 대하는 방식이 딱히 범죄를 유발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짐 스털링은 니코의 인물됨과 특정 상호작용의 묘사가 살인, 혹은 심지어는 매춘까지 불쾌하고, 차갑고, 너저분한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느꼈다. 소수의 플레이어는 게임의 시스템 속에서 가능한 도덕적으로 행동하는 도전을 하고 있기도 하다. 게임 상에서 가능한 최소의 범죄를 저지르며 플레이 하려는 공략법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

니코가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감정은, 니코가 두 암살 목표 중 한 명을 선택하거나 적을 놓아줄 것인지 선택하는 순간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플레이어에게 제시하기도 한다. 닉 디니콜라(Nick Dinicola)는 그의 카르마 시스템에 대한 비평[footnote]역주: 카르마 시스템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하는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칭한다.[/footnote]에서 플레이어가 플레이보이 X와 드웨인 중 누구를 죽일 건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더라도, 주인공의 원칙은 특별한 카르마 시스템이 없이도 하나의 선택을 향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응가이 크로알과 마찬가지로, 이 게임을 플레이한 여러 개발자들이 딱 그 이유로 그런 선택을 내렸다. 하지만 웨스 에델렉을 비롯한 몇몇은 플레이보이 X를 죽일 때 얻을 수 있는 게임 상의 보상이 실질적으로 더 낫다는 점이 이 딜레마에 독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게임은 일반적으로 니코에게 가능한 선택 중에서 어떤 것도 선호하지 않고, 이 대부분 어떤 결정에도 뚜렷한 도덕적 정직성이 없음은 블로거 Droll이 게임의 강점 중 하나로 꼽았다.

플레이어는 프란시스와 데릭 맥레이 사이의 강요된 선택에도 일반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이는 게임이 이 결정의 귀결에 진지하게 관여하지 않아서기도 하다. 맥레이가와 니코의 관계가 이어지면, 잃어버린 형제에 대해서는 덜 논하게 된다. 하지만 이 귀결의 중립성이 항상 니코의 선택에 의미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 블로거 Jesusofwales는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벌이나 보상 없이 다르코의 운명을 선택할 수 있게 한 것에 찬사를 보냈다. 톰 칙도 마찬가지로 다르코를 죽일 것인지 용서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게임보다는 플레이어를 말한다고 언급하며, 사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보거나 듣기보다는 생각하게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얀 라마찬드란(Nayan Ramachandran)은 특정한 선택을 도덕적 결정으로 가장하는 것은 니코가 미션 중이나 단순히 차량운행 도중에 저지른 수 없는 살인을 사소하게 하는 데 공헌할 뿐이라고 느꼈다. 이 관점에서 저스틴 케번은 GTA IV를 한 가지 절대적인 원칙을 보여주는 케이스로 그렸다. 살인과 절도가 허용되고 사소해진다면, 삶과 소유는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가는 로우 로드

GTA IV는 공들여 디자인된 도시와 맞물려 천박한 성관념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미국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 코버스 엘로드(Corvus Elrod)가 이에 관한 질문을 던졌을 때, Fuzzy Bastard(17번 댓글)는 현실을 찌르는 것보다는 미국이 구현한 관념에 대해 브레히트식 풍자를 하려는 시도로 게임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대답했다. 주노 디아즈(Junot Diaz)가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를 통해 GTA IV는 불편한 현실보다는 미국의 문화적 기피를 실증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자, 웨스 에델렉도 그와 유사하게 아메리칸 드림을 비추는 “도깨비집 거울”이라는 저급 풍자로 해석되어야 한다[footnote]역주: ‘도깨비집 거울’[funhouse mirror]은 비추는 상을 왜곡시키는 거울로 예술작품의 현실에 대한 왜곡된 묘사를 비유할 때 쓰인다. ‘저급 풍자’[low satire]는 심각한 주제를 저급한 문체로 풍자하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저급한 주제를 고급스러운 문체로 풍자하는 것이 고급 풍자[high satire]다.[/footnote]고 답했다.

스펜서 그린우드는 더 나아가 게임이 아메리칸 드림을 그 원래 형태가 아니라 패키 맥레이와 연결되는 쾌락주의적 관점으로 직접적으로 비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우드의 해석에서, GTA IV는 아메리칸 드림이 삶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즐기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부담하지 않고 떠날 때는 시체를 남기고 가야 한다는 점을 지목하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피터 콘라드(Peter Conrad)는 옵저버에 쓴 기사에서 “GTA IV는 우리의 기계화된 삶의 가속도와 자멸적인 궤도를 말한다”고 주장했다. 플레이어는 니코를 위해 어떤 선택이라도 내릴 수 있지만, 바랄 수 있는 최고의 승리는 공허한 것이다. G. 크리스토퍼 윌리엄스(G. Christopher Williams)도 유사한 결론을 내렸다. 그의 관점에서, GTA IV는 행복의 추구에 대한 숙고이다. 니코 벨릭은 부자가 되고 멋진 여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촌의 말에 꾀여 미국으로 왔고, 결국에는 그의 끔찍한 과거를 떨쳐낼 수 있길 바랬다. 하지만 록스타가 놓은 세계는 그 꿈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었다. 윌리엄스의 말이다.

GTA를 행복을 이루기 위해 무자비한 잔혹함을 해내야 하는 것으로 비난하는 것은, 똑같은 “규칙”이 작용하는 또 다른 “시스템”(록스타가 행복의 추구에 대한 집착으로 그린 미국처럼)을 비난하는 것이다. GTA는 범죄자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GTA가 보여주는 미국의 광경은 자본주의와 욕망에 뿌리내리고 있는 유사한 성격의 어떤 “게임”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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