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5일

나의 60세 생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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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게임 산업의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이었던 크리스 크로포드는 어느날 게임계가 자기가 품은 꿈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게임이 사물에만 집중하지 말고 '사람'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후 줄곧 게임 업계의 경향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던 그는 90년대 중반, 결국 꿈을 위해 게임과의 작별을 선언합니다. 산 속에 살며 외부로 나오는 일은 거의 없이 마음이 맞는 소수의 사람들과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것의 개념을 다듬고 그 산물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는 그것이 게임을 대체하고 세상을 뒤집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길 십수년, 은둔자 혹은 비판 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하던 그는 2007년에 그의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예, 아시다시피 그는 세상을 뒤집긴커녕 그 존재를 제대로 알리지조차 못 했고, 지금 게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사람' 혹은 수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프로젝트를 일시적으로 중단했고 60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2010년 6월, 60세 생일 몇 주 후, 그는 자신의 웹사이트에 생일날 깨달았던 것을 술회한 에세이를 올렸습니다. 다음은 바로 그 에세이의 번역입니다......:)


크리스 크로포드
2010년 6월 29일
원제: Sixty (원문보기 [영어])


나는 사람이 죽을 운명임을 거부하는 자연스러운 성향과 싸우려 한다. 가끔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준비가 되어 있나?" 나는 두 개의 항아리를 이용해서 내 삶이 무한하지 않음을 자신에게 상기시킨다.

거의 10년 동안 이 항아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안에는 색상마다 정확히 3,652개의 구슬이 있다. 구슬 하나가 하루다. 큰 항아리의 가장 밑에 있는 노란 구슬은 내 삶의 첫 10년을 나타낸다. 검은 구슬은 내 10대, 녹색은 20대, 주황색은 30대, 파란색은 40대, 빨간색은 50대를 나타낸다. 파란 층이 아주 얇은데 항아리가 파란 구슬이 있는 곳에서 넓어지기 때문이다. 작은 항아리에 있는 노란 구슬은 내 60대, 주황색 구슬은 내 70대를 나타낸다. 나는 내가 80번째 생일까지는 생산성을 유지할 것이라 본다. 따라서, 작은 항아리에 있는 구슬들은 내 삶에서 하고 싶은 것을 모두 마무리하기까지 앞으로 남은 날들을 나타낸다. 매일 아침, 나는 작은 항아리의 구슬 하나를 큰 항아리에 옮기며, 이 하루를 낭비하지 말자고 자신에게 말한다. 보다시피, 나는 이미 내 구슬의 대부분을 써버렸다. 지나간 날이다. 남은 구슬은 많지 않다.

몇 주 전, 나는 마지막 빨간 구슬을 큰 항아리에 옮겼다. 60살을 넘은 것이다. 내게 이것은 커다란 전환점이다. 수십 년은 삶의 유한함을 숨긴 채 살 수 있지만, 60번째 생일은 죽음을 거부할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 생일은 핵심을 짚어준다. 넌 이제 늙은이다. 언젠가는 죽음을 맞는다. 더는 모른 체할 수 없다.

나는 항상 삶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것을 성숙함의 기준으로 생각했다.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정말로 알기 전까지는 완전한 어른이 아니다. 나는 그 깨달음을 영혼 깊이 담고자 정말 노력해왔지만, 60번째 생일이 오기 전까지는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날짜라는 것은 보통 내게 별 의미가 아니다. 나는 1999년 12월 31일 밤 11시에도 잠자리에 들려 했던 것을 기억한다. 새 천 년을 맞으려고 한밤중까지 깨어 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날짜는 단지 숫자이고 의미가 없는 임의의 관습이다. 그러니 60번째 생일도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 했다.

60번째 생일이 내게 그렇게 충격을 준 이유는 내가 아직 내 인생의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깨달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interactive storytelling)[footnote]역주: 이 용어는 크로포드 본인이 만든 것이다. 번역소에 참고할만한 번역글이 있다.[/footnote]이다. 나는 이에 대해서 누구보다 앞서 있었다. 1983년 나는 사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근본적인 요소를 게임이 놓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로부터 9년을 게임에 진정 인격이 스며들도록 노력했다. 거기서 다소 진전을 보았으나 게임 산업은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고 내가 필연적이라 생각한 길을 계속 걸어가려면 게임 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겠다는 걸 깨달았다.

1992년 나는 인물의 상호작용에 중점을 둔 게임을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그때 나는 내 노력을 설명하는 데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이란 용어를 정착했다. 누구도 그런 방향을 생각하기 전의 일이었다(브렌다 로렐이 몇 년 앞서 게임 속의 극[drama]을 사색하긴 했지만). 게임업계 친구들이 그런 개발 방향을 추구하는 내가 완전히 미쳤다고 했던 걸 기억한다. 누구도 게임 속 이야기[스토리]에 관심이 없었다. 모두가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하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렵겠지만, 90년대 초에는 정말 누구도 게임에 이야기의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가장 큰 히트작은 "둠"이었고, 그것을 개발한 팀이 이야기의 역할에 관한 논쟁으로 분열된 것은 유명하다. 승리한 쪽은 "이야기 따윈 필요 없고, 액션이 전부다."라고 단언했다. 게임 업계는 그들의 명확한 사고에 박수를 보냈다. 이야기는 겁쟁이를 위한 것이었다.

몇 년이 지나, 나는 생각이 같은 소수의 이상가들을 데리고 외로운 모험을 계속했다. 자금이 적었기에 느리고 고통스러운 길이었다. 2007년에 우리는 커다란 진전을 이루어냈지만, 2009년 여름 어떤 지지도 얻어내지 못했음이 분명해졌다. 나는 스토리트론(Storytron)[footnote]역주: 크로포드가 제작중이고 한 번 공개한 바 있는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저작 도구.[/footnote]을 코마 상태로 만들어놓고 미래를 숙고했다.

그렇게 내 60번째 생일이 닥쳤을 때, 나는 가장 중요한 일을 성취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옳다고, 세상이 알아볼 시간만 충분히 주면 당연히 세상을 지배하게 될 생각을 실현하고 있다는 차분한 확신이 있었다. 내 60번째 생일은 내 생각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아주 확실하게 실패했다고 시끄럽게 소리쳤다. 분명히 철저한 실패인 것처럼 보였다. 사실 나는 믿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내가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에 견고한 접근을 취해왔고 언젠가 세상이 내 작업의 진가를 알아보리라고 믿는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실패의 증거는 쌓여가고 있다.

내가 열 살이던 1960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신생 지구에 살고 있어서, 몇 블록만 가면 개발업자들이 흙으로 산을 쌓아놓은 공터가 있었다. 아마 30피트 높이에 150피트 넓이였을 것이다. 하루는 아이들이 "산의 제왕"이라는 즉흥적인 게임에 빠져 있을 때였다. 흙덩어리를 무기로 하는 싸움 놀이였다. 작은 아이가 던질 수 있는 덩어리야 크지 않아서 상처를 입을 위험도 없었다. 최악의 경우래도 덩어리를 맞아서 약간 얼얼한 것뿐이었다. 싸움을 시작하며 우리 팀은 공격해오는 팀으로부터 산 정상을 지켰다. 나는 팀의 대장이었고 우리는 잘 싸웠다. 하지만 머릿수가 부족했고 천천히 공격자들에게 땅을 잃었다. 결국에는 우리 팀 모두가 산에서 내몰렸지만, 나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는 산 정상에서 퇴각하고 꼭대기에서 10피트 아래의 보루로 내려가야만 했던 순간을 생생히 떠올린다. 여기서 나는 굳건한 방어를 형성하고 미친 듯이 나를 둘러싼 적들과 싸웠다. 적 팀의 대장은 꼭대기에 서서 내게 커다란 흙덩이를 굴렸다. 너무나 커다란 역경이었다. 나는 산에서 내몰렸다. 나는 우리 팀을 꾸짖었고 산 밑부터 체계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비스듬히 나아가고, 적의 측면을 공격해 조금씩 그들을 몰아냈다. 날이 저물 때 우리는 다시 산 정상을 탈환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모두 집에 갔다.

그 이래로 나는 절대 거대한 역경에 기가 죽은 적이 없다. 무엇이든 마지막에는 극복할 수 있다고 언제나 알았기 때문이다. 그저 이따금 후퇴와 얼얼한 흙덩어리를 받아들이되 계속,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60번째 생일을 맞은 이때, 나는 진정 패배한 듯하다. 온 사방에서 흙덩어리가 비 오듯이 쏟아지고 있다. 운명은 산허리에 있는 내게 거대한 흙덩어리를 굴리고 있다. 날은 늦었고 저녁 시간이 다 되어간다.

60번째 생일에, 나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마지막 한 번 시도하겠다. "아서왕의 죽음"[footnote]역주: Le Morte d'Arthur, 1998년 크로포드가 "아서 왕의 죽음"을 모티브로 만들려고 했다가 중단된 게임 프로젝트.[/footnote]을 만들겠다.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마지막 한 번의 시도를 하겠다. 결말은 둘 중 하나다. 웅대한 승리로 끝나거나, 내 삶은 실패했고 나는 철저한 패배자임을 인정하며 끝나거나.

댓글 11개:

키리 :

왠지 서정적인것 같은 글인듯도 하고..



60이란 나이에도 꿈을 가진것 같아 좋아 보입니다. :)

밝은해 :

@키리 - 2010/11/05 11:35
개인적으로 크로포드에 대한 애정이 있어선지 읽을 때나 번역할 때나 살짝 슬펐습니다. 뒤에서 응원하고 있습니다, 흑

동우리 :

Storytron과 크리스 크로포드를 기대했던 한 사람으로... 가슴 한 쪽이 싸하지만...(아이폰으로 이 글 보다 울뻔 했음) 환갑의 게임 디자이너를 응원 합니다!!

밝은해 :

@동우리 - 2010/11/05 17:29
옙, 큰 성과는 없지만 그가 걸어온 자취에서 배울 것도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동우리님과 제가 한국에서의 응원팀이 되는 건가요 ㅎㅎ

마이즈 :

우리는 이루지 못한 꿈을 꾸는 사람을 몽상가라고 부른다.

하지만, 몽상가가 꿈을 이루면 영웅이 된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

하지만 그는 영웅이 되지 못하더라도

후대에게 많은 것을 남기고 있으니 옳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밝은해 :

@마이즈 - 2010/11/06 12:45
예! :D

말씀처럼, 그의 초기 연구는 게임 디자이너들의 고전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대안을 추구하며 걸어온 발자취는 현세대에 대안을 찾는 이들에게 영감을 주니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는 삶이죠.

...다만 그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고블러 :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걷는 외곬은 멋집니다.



부디 멋진 게임을 만들길 빕니다~



저도 60의 나이때에도 저런 모습이면 좋으련만ㅋㅋㅋ

밝은해 :

@고블러 - 2010/11/08 01:08
저도 60넘어서까지 돌진하고 싶습니다

flwotkbd :

가슴에 남는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은 개발자들이 미야모토 시게루 나 존 카멕, 혹은 허민 같은 승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처럼 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패자가 되겠지요.



크로포드의 글을 읽으니 패자가 되었을 때를 간접 체험하는 것 같아서 심히 우울해집니다.

한편으로 어차피 패배할 운명이라면 후회없이 게임 개발을 해야겠다는 비논리적인 오기도 생기네요^ㅇ^

saladom :

아서왕의 죽음이라는 게임은 어떤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밝은해 :

@saladom - 2010/12/23 10:59
매우 늦은 답변 죄송합니다;



'아서왕의 죽음'은 크로포드가 게임계를 떠나고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 기술을 개발할 때 만드려다가 중단한 작품입니다.



크로포드는 이전에도(80년대) 아서 왕 전설을 소재로 한 게임을 만든 적이 있는데요. 다른 글에서 아서 왕 전설을 종종 언급하는 게, 왠지 아서왕 전설에 애착이 있는 것 같네요.



특히 다른 아서왕 이야기 중에서도 기사도와 낭만이 가득한 '아서왕의 죽음'을 인터랙티브 스토리텔링으로 만든다는 건 크로포드에게 어떤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도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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